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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27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Making Money (5)
- 2009/03/22 090322
- 2008/12/31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시르트의 바닷가
- 2008/12/26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 2008/03/25 080325 동네 도서관(?)
- 2007/12/30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증언 (1)
- 2007/08/26 책 정리 일기
- 2007/05/27 네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2)
- 2007/04/30 월간 <판타스틱> 창간호
100729 숨은 신
왜 라신의 비극이 그토록 내 취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고등학생 시절 파스칼의 『팡세』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나의 취향을 피력했었고,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변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골드만이 라신과 파스칼, 루카치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비극적 세계관의 모든 것이 나를 매료한다. 더불어 작년에 문피아에서 연재될 때 그렇게 열광했던 『레드 세인트』와 『루나틱 언밸런스』가 이런 비극적 세계관을 놀라울 정도로 ㅡ 상당히 노골적인 수준으로 ㅡ 투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정말 취향은 어디 가질 않는구나. 지금은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을 읽고 있다. 이걸 읽고 나면 번역되지 않은 『숨은 신』의 뒷부분을 마저 읽어야지. 뭐랄까, 읽는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이니 기호와 흥미와 변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Making Money

테리 프래쳇의 장점으로 현란한 패러디와 배꼽 빠지는 슬랩 스틱 코미디, 천진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보니 소재를 가공하는 능수능란함도 빼놓을 수 없겠다. 기초적인 경제학과 약간의 역사적 사실 ㅡ 어쨌든 현실과 닮은꼴이니까 ㅡ 을 소재로 이렇게 코믹한 글이 나올 수 있다니! 코믹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이대로라면 테리 프래쳇이 살아있는 한 디스크월드 시리즈는 소재가 떨어지는 일 없이 백 권이라도 가능할 것 같다. (참으로 바람직하군.)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돈 만드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느껴지지도 않는데(주1), 『마법의 색』에서 두송이꽃이 처음 앙크-모포크에 발을 들였을 때 개념 없이 금화를 펑펑 써대는 장면이라든지, 『Interesting Times』에서 아가티안 제국으로 넘어간 린스윈드가 처음 지폐를 대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 전작에서 모이스트가 우표를 고안해내는 과정 등이 이미 이 작품을 예고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작품에 대해서는 은근히 상 복이 박한 테리 프래쳇은 이 작품으로 2008년 로커스 상을 받았다고.
머리를 잘 굴리고 혓바닥은 더 잘 놀리는 모이스트 폰 립빅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고는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인데, 전작에 비하면 역경도 별로 없고 어찌 되었든 종국에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점이 약간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운수대길 만사형통 영지발전물에서 가끔 나오는, 명령 한 번에 돈을 뚝딱 만들어 유통시키는 장면과 비교하면 섭섭하다. 주인공에게 역경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작가가 충분한 고려 없이 몇 문장으로 설명해 버리고 넘어가는 것과 디테일을 묘사하면서도 '왜 심각해지시나? 한 번 웃을 타이밍이라네'라고 눈을 한 번 찡긋하며 코믹함으로 정리해주는 것을 도매금으로 묶어서 취급할 수야 있나. 그래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왠지 모이스트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작에서 로드 베티나리는 그에게 우체국을 되살리라는 임무를 내렸고 그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은행에 들어가서 돈을 좀 굴려보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로드께서는 다음엔 국세청에 보내볼까 고려중이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아무리 테리 프래쳇이라도 참신함을 살리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게다가 모이스트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잠재워주는 위험한 누님과 결혼할 예비 신랑이니까(...)
아, 그리고 끝으로 한 마디 더. 앙크-모포크에 로드 베티나리의 팬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흡족한 사실이다. (주2) (앙크-모포크의 유일한 투표권자로서) 1인 1표제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이시며 차갑고 명석한 두뇌와 강렬한 존재감의 소유자이신 우리 총독님은 능력도 좋으시지. :) 뱃속에 야망을 키우고 있는 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앙크-모포크를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로드 베티나리 그 자신이 되는 것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로드 베티나리 워너비'들이 정신병동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이미 로드의 빠슨이가 되어 버린 루나양에게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는 심경으로 로드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암살자와 강도, 머리 빈 영웅들이 활보하는 앙크-모포크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아 전제정치를 펼쳐주시기 바란다(...)
1) 많은 사람이 루나양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재테크 또는 경영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가,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2) 누구씨를 위해 덧붙여 둔다. 언젠가 제레미 아이언스가 로드 베티나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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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루나양을 구르게 만드는 주옥 같은 표현들로 가득한 책을 하나 소개한다. 아르투어 카우프만의 『법철학 입문』에서 몇 부분을 발췌해본다.
…즉 당위는 항상 보다 높은 당위에서만 끄집어 낼 수 있다라는 주장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웅대한 착각이 없지 않지만(켈젠을 보라!). - 72p켈젠 아저씨 지못미. 전 '순수'가 싫어염.
이때에 이러한 존재적으로 있어야 할 것은 구체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는 것, 즉 응보형벌 대신에 나타난 개선형벌이다. …(중략)… 즉 여기서 말하는 발전이라는 것은 단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지, 개선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잘못될 수 있으며, 그리고 메르켈과 리스트의 사후에 법역사도 깜짝 놀랄만한 명확성으로 그 점을 분명히 해주었다. - 125p'법철학의 안락사'라고 불리는 일반 법학의 창시자 메르켈과 그 계승자 리스트에 대한 비판이었음. 정말 깜놀할 코멘트. 몸이 배배 꼬이는 것 같다.
사비니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이 있겠지만, 비록 독일의 가장 중요한 민법학자는 아닐지라도, 가장 중요한 민법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독일의 법학이 세계적 영향을 준 것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 92p교주님께서는 우리 모두 사빈이선생의 노예라고 말씀하셨지. 이 모든 것의 원흉이 여기에 있었구나(크릉)
그 외에도 벨첼이 통쾌하게 당하는(지못미 벨첼 아저씨. 사실 당신 교재에 쌓인 불만이 좀 많았어.) 장면 등 루나양을 웃긴 표현들이 차고 넘치지만 타이핑하기가 귀찮으므로 여기에서 끝. 이게 왜 웃긴지 알 수 없다면 아직 자신은 정상인의 감수성을 지녔으므로 안도해도 좋다.
+ 그러니까 왜 나의 눈에는 이 문장이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시르트의 바닷가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대산 세계문학총서만큼이나 좋아하는 기획이다(작품 목록만 보면 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다양성과 수록량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이다). 원래 책을 살 때에는 장르, 작가, 출판사 등등 따지면서 고르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워낙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내고 있으니 믿고서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가 가끔 예상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시르트의 바닷가』도 그런 경우.

수도의 '상위의 권태'에서 벗어나 남쪽 오지로 부임한 귀족 청년 알도가 시르트의 바닷가에서 건강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장면에서마저도 나른하고 지루한 정취는 변하지 않는다. 작품의 처음부터 이어진 이런 나른함이 깨진 것은 알도가 300년 전에 오르세나와 휴전을 했고, 그 이후 전혀 교류가 없던 이웃 나라 파르게스탄과 접촉을 시도할 때였다. 말로만 들어왔던 '적국'과의 대치 상태가 시르트에서는 추상적으로나마 남아 있음을 알고 묘한 흥분을 느낄 때부터 작품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알도가 수도에 있을 때는 전설로만 여겨졌던, 시르트에서조차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적국'이 드디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이야기는 급반전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했던 급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상의 권태를 누리고 있는 수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시르트에서는 무수한 소문과 더불어 묘한 움직임이 생겨난다. 주목할 점은, 종말의 예언에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 ― 공포, 분노, 불안 등 ― 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체화되는 전란의 전망 앞에서 알도는 연인 바네사와 보안평의회의 다니엘로에게 반발하지만, 세월에 풍화되어 가던 도시의 숙명을 깨닫는 순간 평온과 희열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침묵 속에 다가올 전쟁을 기다린다.
왜 오르세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불러올 지도 모르는 전쟁을 기다리는가? 작중에서 바네사는 권태에 사로잡혀 그저 '존재할 뿐인' 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계속해서 알도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알도, 자기는 이런 꿈 꾼 적 없어? 지구가 홀연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그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도는 꿈 말이야. 이 광란의 질주 속에서 폐가 약한 짐승들은 그 자리에 낙오되어 버리지. 이들은 미래를 좋아하지 않는 짐승들이야. 그러나 숨쉬기조차 힘든 속도를 견디는 심장이 자기 안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시선과 본능에 죄와 파멸로 보이는 것, 그것은 바로 이러한 도약을 방해하는 것이야. 단지 옆에 있기 때문에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미치는 먼 곳을 한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일 게 분명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저주받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먼 곳을 차단하기 위해 그 도시들이 탄생하고 건설된 것처럼 여겨진다는 이유 때문이지. 이런 도시들은 편안한 도시들이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세계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자신의 바퀴만을 돌리고 있을 뿐이지. 나는 거리에서 사막의 바람이 느껴지는 도시만을 좋아해. 어떤 날은, 알도." 바네사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르세나를 심하게 원망하기도 했어. 거기엔 늪의 냄새밖에 없어. 나는 이따금 도시가 지구의 자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 331~332p그러나 그라크는 이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에 구현해내려고 한다. 그라크가 작품 전반에서 그리고 있는 오르세나의 인상이 얼마나 나른하고 지루하며 실체가 없는지는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타자'로서 등장한 것이 '이웃 나라-적국'이다. 사실 작품의 거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도 과연 오르세나에 적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오르세나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적국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추상적이나마 뚜렷한 인상을 가진 오르세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허깨비에 불과했던 '적'이 마침내 실체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낼 때, 자기완결적이던 오르세나의 견고한 일상이 무너진다. '이렇게, 그들이 오는군요!'라고 외치는 알도의 대사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느릿하고 차분한 서술에, 대부분의 묘사가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은 떠오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능력있는 작가는 다르다 ―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인 것 같다. 그러나 완독 후의 인상은 마치 이스마일 카다레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을 정도로.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간 읽은 책 중 최고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치프킨은 소련 출신의 지식인으로, 낮에는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성실한 작가였지만 생전에 단 한 줄의 소설도 출판해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주위의 적대적인 시선하에 글 쓰는 것을 들킬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서방으로의 망명은 번번이 좌절되고 사회적인 압력이 더해가는 와중에도 묵묵히 글을 썼다는 치프킨은,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결코 책으로 낼 수 없을 거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남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을 거란 이유로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그의 작품이 그에게는 동시에 위안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 안에서 치프킨은 분신인 익명의 화자의 입을 빌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역시 고통받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대문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도스도예프스키가 살았던 시대 상황의 격변, 투르게네프 등 다른 러시아 작가들과의 불화, 그리고 여담으로 또 한 명의 작가 솔제니친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독자 눈앞에 그려지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모습은 존경받는 대문호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우울과 좌절, 강박감에 시달리는 자존심 강하고 괴팍한 인물로, 아내 안나의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에서만 위안을 얻는 인간이다. 치프킨과 도스도예프스키는 살았던 시대도, 혈통도, 성격도 다른 사람이지만 깊은 애정과 숭배를 바탕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대문호의 모습에서는 진한 인간적인 동질성이 느껴진다. 이렇듯 두 이야기를 대위적으로 엮어내는 놀라운 솜씨 덕에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느새 독자의 마음속에 작가 대 작가로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끝내 생전에 발굴되지 못한 작가와 그의 절망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지만, 손에 만져지는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 섬세하고 사실적인 상상력과 도스도예프스키에 대한, 더 나아가 그 정열적인 러시아 문호조차 포용하지 못했던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담겨 있다. 강력 추천.
080325 동네 도서관(?)
배경은 헤이안 시대. 천황의 아들로, 누구보다 잘나고 아름다워 얼굴에서 빛까지 난다는 히카루 겐지의 여성 편력이 주된 내용이다. 얼마나 자랑할 만한 여성 편력이냐 하면, 이제 겨우 1권을 읽었는데(전 10권) 겐지가 건드렸거나 건드릴 예정인 여성이 벌써 시녀 빼고 7명이나 된다. 주인공이 얼마나 개념이 없는지 몇 주를 기다리며 노린 남의 첩을 덮치러 가서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를 범해 버린다거나 하는 건 예사다. 심각한 마더콤이라서 일찍이 여읜 어머니와 빼닮았다는 부황의 후궁을 임신시키질 않나, 다시 그녀를 닮은 그 조카딸 ㅡ 이제 막 읽고 쓰기를 배우는 어린애 ㅡ 을 아비한테서 몰래 빼내와 자기 입맛대로 키우려고 하질 않나. 이 정도 되면 아무리 헤이안 시대의 결혼 풍습이 지금과 다르다고 해도 충분히 패륜 아닌가염; 게다가 이 대단한 주인공은 아직 십대다. 이런 걸 남자의 로망이라고 하는 건가?; 나 다음 권 읽어도 괜찮을까 몰라. lllorz
내용은 저래도 분위기부터가 귀족적이고 묘사나 문체가 굉장히 화려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시구들은 꽤 운치가 있다. 요새 번역투의 딱딱한 글만 읽었더니 이런 유려한 문장에 적응이 잘 안 되긴 하지만. 작중에서 겐지가 본격적으로 바람기를 날리기 전에 남자들이 모여 여러 여성상을 품평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여성 작가가 저런 걸 썼다는 게 재미있었다.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떠벌이는 동기가 있다면 어쨌든 바가지부터 긁고 보겠지만, 읽다보니 의외로 공감가는 구석도 있고 나쁘지 않았음. 2권은 누가 빌려갔는지 없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다 읽고 남는 게 있으면 제대로 리뷰나 한 번 써야지.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증언
2007년은 『눈뜬 자들의 도시』나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마일즈의 전쟁』 등 내가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읽었던 책이 많이 나온 해다. 하지만 올해 '나온' 책이 아니라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고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았다.
솔로몬 볼코프 편저, 김병화 옮김/ 이론과실천
원래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책은 손이 잘 안 가는데 올해에는 마르케스 자서전이 나오기도 했고, 평소보다 자전적인 글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보다 더 즐겁게 읽었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세계,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혹자는 이 책에서 발견한 반공주의 때문에 위작이 아닌가, 위작이 아니라도 편저자 볼코프 자신의 생각이 더 많이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반공주의자였나 아니었나가 아니다. 그는 전제군주제이든, 공산주의든, 천민자본주의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을 도구로 이용하는 권력에 반발했다. 무소르그스키와 함께 대표적인 유로지비로서 온 세상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던 그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이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보다 인간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이제서야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처럼 '러시아의 비밀스러운 역사'라는 그의 음악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책 정리 일기
집에 왔다. 약 3주 전에 들른 뒤로 처음이다. 두 달 밖에 나가있지 않았건만 짐이 굉장히 많아져서 - 가 있으면서 새로 산 책들도 한몫했다 -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이사 오냐고 물었을 정도. 한창 혼잡한 저녁 시간대에 밀리는 차 행렬을 따라 와서 무척 피곤했지만 엄청난 짐을 다 풀어 정리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늦잠 좀 자볼까 했는데 TV를 거실에서 치워 버린다고 - TV 소리가 들리면 공부를 못한다는 어무이의 배려(...) - 부산을 떠는 통에 그러질 못했다. 좁은 거실에서 긴 의자를 치우고 안방에 있던 책장을 옮겨와 다시 꾸몄다. 안방에 책장을 놓을 때도 물론 내가 직접 정리했지만, 점점 책이 늘어감에 비해 안방 드나들기가 귀찮아지자 취향에 맞는 책들 몇 권만 빼내어 내 방에 두고 나머지는 방치해 두었었다. 그 덕에 안방 책장은 엄청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어 나중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하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제야 TV 퇴출과 함께 빛을 보게 되었지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도 ‘거실에 서재 꾸미기 운동’에 동참하는 거냐고 농담을 하시던 어머니는 책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자 낯빛이 점점 변하시더니,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읽던 문학 전집을 빼 버리자고 하셨다. 청소년용 전집임에도 불구하고 축약본이 아니라는 미덕(?)을 지니고 있는 데다, 한국 문학부터 외국 문학까지 골고루 수록되어 있는 전집이라 내 사랑을 받아온 그 전집을 ‘초딩’이라는 어휘의 부정적인 어감이 모조리 화체되어 있는 사촌 동생에게 준다니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뛴 건 나, 책은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고 반대한 건 아버지. 날도 더운데 그다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나지만 어머니가 또 쓸데없는 책 - 독서 취향이 다르다 보니 내가 사다 놓은 SF/판타지물은 어무이의 ‘쓸데없는 책’ 부류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갖다 버리자고 하실까봐 자청해서 서가 정리를 시작했다. 소설류, 비문학은 나나 어머니가 읽는 책이고, 불교나 여행 관련 책자들은 아버지 취향이다. 세로쓰기로 된 중국 고전 - 『시편』, 『예기』, 『좌씨춘추』 같은 - 전집도 있다. 책 정리하면서 스스로 놀란 것이, 집에 두고 있는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읽지 않은 책이 많았다. 특히 요새는 스토리가 없는 책은 읽기가 힘들어졌다는 핑계를 대며 멀리했던 비문학 부분에 그런 책이 많았다. 신간이 나오면 도서관에 가서 읽고 스스로도 책을 심심치 않게 사들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안 읽은 책이 이리 많다니 개탄스러운 노릇이다. 더욱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던 것은 통학 문제 때문에 이사 온 지금 집에 책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베란다 수납장에 쌓아둘 수밖에 없었던 책 무더기였다. 겨우 거실 벽 한쪽 메운 책장에서도 이 정도인데 거기 있는 책들까지 합치면……lllorz
네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경제학원론 레폿 쓰기 싫어서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레폿이라는 것을 써본 지 백만 년(작년 겨울에 쓰고 안 썼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전에 썼던 레폿들을 꺼내서 훑어보는데 이런 것이 나왔군요. 지난 해 <환상 문학의 세계> 수업에 제출했던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비평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 새삼 부끄러워지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부분도 있어 발췌하여 올려둡니다. 큰 목차 넷 중 둘째 부분입니다. (각주는 인용주만 괄호 안에 간략하게 표시함으로 대체하였음.)
(전략)
문학은 일차적으로 음악과 함께 시간적인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소설이 인간 체험의 한 측면을 드러내어 보여준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소설의 주제와 형식이 시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문학의 주제는 삶의 진행,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간에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 시간 속에 위치해 있으면서 여러 가지의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작중인물 등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Mendilow). 그러나 여기에서는 문학에서 시간 자체가 차지하는 철학적 의미에 대한 깊은 논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시간은 마이어호프가 제시하는 문학에서의 시간의 제 측면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특별히 천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음에서는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시간적 요소가 이 작품의 구조와 주제 구현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어서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