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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수수께끼 변주곡》

2007/01/14 22:29,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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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수수께끼 변주곡》


원작 : 에릭-엠마누엘 슈미트
연출 : 김광보
장소 : 산울림 소극장
출연 : 홍원기(아벨 주노르코), 오재균(에릭 라르슨)


 이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품 스포일은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시놉시스 정도의 내용은 있지만.)

 어두운 오두막을 배경으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이 흐릅니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두 발의 총성이 들려오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아벨 주노르코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십수 년 전부터 외딴 섬에 은둔하며 방문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례적으로 인터뷰를 허락받은 기자 에릭 라르슨이 그를 방문하지요. 기자의 관심은 노작가가 새로 발표한 작품,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던 전작과는 달리 '사랑'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담은 소설에 있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반 년 동안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 한 커플이 헤어져서 15년간 서로에게 쓴 편지를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이 작품이 실제의 커플, 어쩌면 노작가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그를 추궁합니다. 그러나 노작가는 기자의 등장 때부터 총을 쏘아 대며 괴팍함을 과시하고 계속해서 그를 조롱하지요. : "당신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작가에게서 진실을 찾으려 하고 있구먼. 그런데 나보다 거짓말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던가?"

 여기에서 관객들은 두 등장인물이 모두 서로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기자는 노작가의 소설이 그 자신의 이야기라는 고백을 끌어내려 집요하게 추궁하고, 노작가는 그 사실을 계속해서 부인하며 기자를 조롱합니다. 조롱당한 기자는 화가 나서 오두막을 떠나려 하지만 노작가는 기자를 놀렸던 것이 모두 장난이었다는 듯 그가 못 떠나게 하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기자에게 거래를 제안하지요. 도대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의문은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벨 주노르코는 자신이 헬렌이라는 여인 ㅡ 그녀는 기자와 한 동네에 살고 있음이 밝혀집니다 ㅡ 과 15년간 나누었던 플라토닉한 사랑에 대해서 기자에게 말해줍니다. 처음 만났을 때 눈길을 사로잡았던 그녀의 추함, 반 년 동안 사귀면서 육체적으로는 가까웠지만 결국엔 둘이 하나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두려움, 그래서 편지 쓰기를 제안한 후 지금까지 나눈 감정들을 낱낱이 말하는 그는 더이상 "사랑이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생 속의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던 괴팍한 노작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평범하고 고지식한 인상을 유지하고 있던 기자 에릭 라르슨은 작가를 혹독하게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 "당신은 그녀를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부재를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녀는 당신이 만들어낸 상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그녀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이제 에릭 라르슨은 작가가 떠나라고 해도 거부하고 이 문제에 대해 그와 더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태도는 단지 아는 여자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침착하면서도 진지합니다. 그리고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의해서 은둔한 작가와 그의 일상에 침범한 기자의 관계는 시시각각 변해갑니다.

 기자의 비난에 대한 작가의 항변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그는 불멸의 사랑을 믿고 있구나.' 그는 육체적인 사랑 끝에 도저히 그 길로는 두 사람이 하나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나중에는 그만큼 더 멀어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만남 없는 편지의 교환이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해 그녀와 인생과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그의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충실한 비평과 조언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정신적인 면까지 사랑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말하는 사랑은 그와는 대조적입니다. 그는 '일상적인' 사랑을 믿습니다. 곁에 있으면 편하고, 상대방이 다칠까봐 염려해주며, 상대가 아프면 자신도 아파하는 사랑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사랑과 그것을 믿는 기자를 조롱합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이 한 가지 모습일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의 제목 《수수께끼 변주곡》은 에드워드 엘가의 동명의 음악에서 차용한 것이고, 작품에서도 이 음악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곡에 얽힌 이야기가 작중에서도 언급되는데, 널리 알려진 멜로디를 변주해서 만든 곡이지만 누구도 원 멜로디를 알지 못해 말 그대로 '수수께끼'가 되어버린 이 곡은 마치 알 듯 모를 듯 실체가 없는 사랑을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편지의 여인 헬렌은 주노르코에게 이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선물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요. 알 수 없어요."
 또 하나, 《수수께끼 변주곡》에 숨겨진 반전들은 매우 극적이긴 하지만 감 좋은 관객들이라면 대부분 미리 알아차릴 만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은 비밀들은 조심스럽게, 그리고 치밀하게 감추어져 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며 인물들의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반전 드라마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수수께끼를 '변주'하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어울리는 제목인 셈이지요.

 《수수께끼 변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에릭 라르슨은, 그리고 아벨 주노르코는 자신에게, 서로에게 묻습니다. 아벨 주노르코가 사랑했던 것은 과연 헬렌이라는 한 여인이었을까요, 그가 머릿속에서 그린 그 여인의 이상적인 형상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이미지를 만들어낸 장본인일까요? 그가 쓴 소설 ㅡ 결국에는 그와 헬렌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ㅡ 은 결국 가장 아름다운 거짓말이 담긴 '소설'이었던 걸까요? 이 수수께끼 앞에서 두 사람은 분노하고, 후회하고, 위로하고, 회상합니다.

 에릭 라르슨의 역할을 맡았던 오재균 씨의 연기는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비밀을 감추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범한 신문 기자 행세를 하는 라르슨의 부드러우면서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대사를 무척 잘 소화하더군요. 작품 내내 그 부드럽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감정이 격앙되어 "내가 본 그 빛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살아있었습니다! 살아있단 말입니다!"라고 외칠 때에는 그대로 가슴이 철렁. 캐릭터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ㅡ 반면에 아벨 주노르코는 조금 정형화된 감이 있었습니다 ㅡ 연기도 훌륭해서 마음껏 감정 이입이 가능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저녁, 한 편의 잘 짜인 심리극과 러브 스토리를 원하시는 분, 그리고 잠시 혼자서 상념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분에게 추천합니다.


덧 하나. 그런데 이 작품에서 윌슨x하우스의 인상을 받은 건 저뿐일까요? -_-;
덧 둘. 산울림 카페는 음료 값이 비싸지만 대신 굉장히 양이 많고 맛이 좋더군요. 운치도 있고.
2007/01/14 22:29 2007/01/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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