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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25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후기

2009/10/26 00:31,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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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일시 : 10월 25일 오후 7시
장소 : 샤롯데씨어터
캐스팅 : 유영석, 최현주, 정상윤 외

 루나양을 뮤지컬의 세계에 끌어들인 팬텀. 게다가 더블 캐스팅으로 양준모 씨가 출연한다는데 보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캐스팅 비공개 원칙 앞에 울며 겨자 먹기로 눈 감고 산 로또는 유영석 팬텀으로 드러나고... 사실 유팬텀에게 불만은 없다. 그의 절절한 감정 처리나 담백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단지 하나를 고른다면 2001년에 본 유팬텀보다는 신선한 양팬텀의 연기를 고르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양준모 씨의 우렁찬 목소리로 "저주해!!!"의 박력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기대가 무너져서 슬프다는 이야기. 유팬텀의 "저주해!!"는 저주가 아니라서...ㅜㅜ 그래도 <Masquerade>에서 카리스마를 뿜어주셨고, <The Point of No Return>도 좋았다.

 크리스틴은 최현주 씨여서 다행이었다. 2001년 크리스틴이자 현재는 명실 공히 한국 뮤지컬 여배우 중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김소현 씨가 크리스틴 배역에 캐스팅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는 내 머릿속에 녹음된 듯이 재생되기 때문에 굳이 또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실 이분은 어느 작품, 어느 배역을 맡아도 느낌이 똑같다.) 최현주 씨는 조금 뻣뻣한 몸연기(= 팬텀한테 덜 헤롱거린다. 대본에는 트랜스 상태라고 되어 있을텐데.)가 흠이었지만 가창력이 뛰어났고, 공포와 연민에 떠는 크리스틴에 딱이었다. 가장 돋보였던 넘버는 <Twisted Every Way...>와 <The Point of No Return>, 2막의 <Angel of Music> 리프라이즈.

 라울 역의 정상윤 씨. 사실 1막에서는 실망스러웠다. 뭐, 사실 라울은 엄친아 귀족 청년 캐릭터이지 딱히 개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정라울은 정말 개성이랄 게 전혀 없었다. 캐릭터에 걸맞게 귀공자다운 매력이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그마저도 그냥저냥. 그리고 크리스틴을 달래기보다는 윽박질러 설득하려는 듯한 연기가 참으로 어색했다. 그 모습이 2막에서는 젊은 혈기가 넘치는 라울로 해석이 가능해서 다행이랄까.

 칼로타 캐스팅은 누구였는지 까먹었지만(사진을 보면 윤이나 씨 같기도 한데 확신은 못하겠다) 좋았다. 톡 쏘는 대사와 고음으로 질러대는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가 포인트. 아쉬운 점은 과장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였는데 오바가 좀 부족했달까.
 앙드레/피르맹 콤비는 다시 보니 참 반갑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코믹한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음. 서영주 씨 너무 좋다. 표정만 봐도 빵빵 터진다.
 마담 지리는 모든 대사와 노래를 똑같은 톤으로 한다. 엄숙한 캐릭터라는 것은 알겠지만 동시에 팬텀에 대한 두려움을 비쳐야 하는데, 팬텀의 무서움에 대해 경고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고자세다. 발레리나 혼낼 때와 라울을 지하로 데려갈 때의 연기가 똑같다. 게다가 7중창의 불협화음의 중심에 이분이 서있다. 난감허네<

 마이너스 요소를 꼽아보면 일단 번역. 2001년에 비해 더 매끄러운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왜 모든 등장인물이 라울을 '샤드니 자작'으로 부르는 건지. Vicomte Raoul de Chagny니까 '샤니 자작' 혹은 '라울 드 샤니'라고 불러야 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오늘 공연에서 최악의 씬은 바로 <Notes...>에서 <Prima Donna>로 이어지는 7중창 시퀀스. 코믹하고 역동적인 장면이라서 루나양이 <The Point of No Return>, 파이널 시퀀스 다음으로 좋아하는데 극적이고 역동적인 맛이 덜 살아났다. 그래도 칼로타/피앙지/앙드레/피르맹까지는 괜찮았다. 여기에 마담 지리/멕 지리/라울이 가세하면서 엄청난 불협화음으로 - "또 어떤 일이 생길까!!!!" - 지옥의 문을 열었다. 2막에도 7중창이 있는데 1막 만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2막이 1막보다 낫기도 했고... (인터미션 때 상태가 '난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어'였는데 끝난 다음에는 '그래도 괜찮았어'가 되었다.) 초호화 블록버스터급 뮤지컬답게 의상도 무대도 최고로 화려하지만, 어째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이거 양팬텀을 보기 위해 다시 로또를 사서 또 화를 참으며 1막을 넘겨야 하는건가. 상당히 고민된다.


+ 아, ALW의 신작 《Love Never Dies》가 팬텀의 속편이라고 한다.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쓴 속편을 원작으로 한 건가? 과연 ALW의 팬텀이 예전의 포스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2009/10/26 00:31 2009/10/2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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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See What I Wanna See》 후기

2008/07/18 23:14,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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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What I Wanna See



일시 : 7월 17일 오후 8시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캐스팅 : 양준모, 차지연, 강필석, 정상윤, 박준면

 작품 시놉시스를 가장 먼저 접했을 때 일단 떠오른 것은 '왜 하필 이 작품일까'라는 뜬금없는 의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연극 《나생문(羅生門 ; 이하 '라쇼몽'으로 통일)》이 국내 무대에서 공연되었었다. 원작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유명한 단편 「덤불 속」이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역시 걸작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뮤지컬이란다. '뮤지컬 = 대사를 노래로 처리한 연극'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아닌 만큼, 뮤지컬에서 음악이란 단순한 대사처리나 분위기 전환용이 아니라 어떤 목적의식 내지는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적절히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루나양으로서는 뭐든지 장르화하는 것을 좋게 볼 수만은 없다. 게다가 뮤지컬에 잘 어울리는 장르인 멜로드라마와는 명백히 거리가 먼 작품이니 의아할 수밖에. 그래서 반은 호기심에, 반은 배우 욕심 ㅡ 앞으로 양준모 씨 출연작은 모두 보기로 《스위니 토드》 이후 다짐해놓은 것이 있어서 ㅡ 에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라쇼몽> 이야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이 작품의 구성은 다소 특이하다. 막이 시작될 때 <케사와 모리토>가 각각 케사와 모리토의 시선에서 비춰지고, 1막은 <라쇼몽>, 2막의 나머지는 <영광의 날>로 끝난다. 게다가 무대 구조 역시 특이해서, 객석 중앙에 정방형의 무대가 있고, 관객들은 연기 중인 배우뿐만 아니라 무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배우까지 볼 수 있다. 휑한 무대에는 몇 가지 소품과 희고 붉은 조명만이 존재하고, 사방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떠오르는데, 각 면마다 다른 영상을 보여주는 고로 자신이 앉은 면의 화면은 볼 수가 없다. 주제를 암시하는 은유적인 장치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1막의 <라쇼몽>은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남편, 아내, 강도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증언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상대성을 다루고 있다. ‘한 남자가 공원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그 아내를 탐한 강도와 관련이 있다.’ 여기까지는 세 이야기 모두 같다. 그러나 같은 죽음을 둘러싸고 강도는 자신이 살해했다고 하고, 아내는 동반자살을 기도하느라 자신이 찔렀다고 하며, 남편의 영혼은 자살이라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시신을 발견한 극장 경비는 자꾸 중언부언 증언을 번복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관객은 알 수가 없다. 죽은 자는 진실을 말했을 것 같지만 글쎄, 이미 앞선 증언들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본 관객은 그것조차 의심하게 되고, 무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막을 내린다. 결국 작품명대로 알아서들 생각하라는 이야기다. 곁다리로, 등장인물들은 부부가 그 날 보았다는 일본 영화를 반복해서 언급하는데, 그게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1막에서 아쉬웠던 점은 이 작품의 한계를 눈에 띄게 드러내는 ‘아내’라는 캐릭터의 대상화였다. 세 사람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진실은 그들이 보는 ‘아내’의 태도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물들의 시각에 따라 남편과 강도의 캐릭터에는 별로 변화가 없는 반면에, 아내는 '강간을 당하고 남편을 잃은 가련한 여인'과 '욕망을 좇아 남편을 배신한 살기등등한 여인'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간다. 원작을 읽는 독자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려 작품을 곱씹기 때문에 성급하게 이런 인상에 빠져드는 경향이 적고, 영화 《라쇼몽》에서는 마지막에 제3자인 나무꾼의 시각을 더하여 무력한 남편의 비겁함, 강도의 탐욕, 아내의 숨겨진 욕망을 고루, 한층 심도 있게 간파해낼 수 있었다는 점과 대조된다. 더욱 불편한 것은 이러한 대상화가 어쩌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선정적인 붉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아내’는 치마 길이까지 바꿔가며 강도의 시선에, 관객의 시선에 자신을 아낌없이 내보인다. 관객의 무의식에 방향성 있는 선명한 인상을 심어주고서 진실과 거짓의 상대성을 논하는 건 자가당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막의 '영광의 날'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다른 단편 「용」을 각색한 것이다. 원작은 용이 승천하리라는 거짓 예언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실제로 그 앞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는 내용인데, 911 테러 이후 회의감에 시달리던 신부가 거짓으로 기적을 예고한다는 내용으로 각색했다. 그런데 루나양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어째 배경을 센트럴 파크로 바꾸고 기독교적인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놓으니 왠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의 냄새가 강하게 났다. '믿음은 진실을 창조한다' 정도의 메시지를 발견.

 처음의 의문으로 되돌아가서,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장르에 대해 뮤지컬 《See What I Wanna See》은 무엇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지에 관해 생각해본다. ‘차세대 손드하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라키우사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인데, 확실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을 엮어 뮤지컬로 만들 생각을 한 대목에서부터 소재를 선택하는 안목이 범상치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목록에는 마르케스, 로르카, 베르히만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으로 접한 그의 음악은 듣기에 편하지는 않다. 유명한 뮤지컬 넘버처럼 착착 감겨드는 멜로디나 쉽게 다가오는 가사 같은 건 없다. 단지 장르 불명의 현대적인 테마가 서술자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용되며 작품의 주제에 녹아들어 일체가 되는 과정 하나만 보아도 음악 있는 연극과 차별화되는 점을 바랐던 루나양을 만족시킬 만 했다. 뮤지컬로서 음악은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 자체로서 작품의 존재 가치를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요소와 뗄 수 없이 얽혀 ― 이 작품은 특히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 작품의 중심 메시지와 밀착한다. 그야말로 단순한 ‘뮤지컬’이 아니라 ‘종합 무대 예술’이라는 느낌.

 배우들 연기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었다. 양준모 씨는 의외로 노래하는 부분이 적었지만 역시 그 웅장한 목소리는 어디 가지 않았다. 1막 후반부의 영매와의 이중창이 가장 인상 깊었고,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시각적인 분위기는 전혀 달랐지만 영화 《라쇼몽》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며 그 영상을 떠올리게 했고, 동시에 원작을 읽고 있는 느낌을 주었으니 가히 1막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집약한 정점이었다고밖에. 차지연 씨는 가사 전달에 조금 문제가 있었지만 연기 자체는 훌륭했다. 단지 위에서 언급한 문제 때문에 관객에게 다양한 인상을 주는 데에는 실패한 듯. 박준면 씨는 영매와 이모 역을 모두 거뜬하게 소화해냈는데, 이 분 노래는 박력 있으면서 캐릭터에 착 맞아떨어져서 좋았다. (+ 안경 쓴 강필석 씨는 명탐정 코난 같아서 귀여웠다.)

 끝으로 뱀발. 2004년 작인 이 작품은 그동안 해외 뮤지컬이 국내 라이센스 공연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렸던 평균적인 기간에 비하면 굉장히 빨리 소개된 편이라서 이색적이다. 《이블 데드》같은 공연도 그렇고, 요즘 들어 그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게 생각한다. (라이센스 공연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대사가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작품이기는 한데 대중적인 친근함은 떨어지기 때문에 《쓰릴 미》처럼 재공연되거나 《지킬 앤 하이드》처럼 우려먹을만한 작품은 아니다. 아마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국내에서 근시일 내에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지금 관람하시기를 권한다.
2008/07/18 23:14 2008/07/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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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컴퍼니》 후기

2008/06/01 21:11,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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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Company)

일시 : 6월 1일 오후 3시
장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캐스팅 : 고영빈, 서영주, 이정화, 방진의, 민영기, 박수민, 선우, 김태한, 구원영, 홍경수, 양꽃님, 난아, 유나영, 김지현

 1월부터 기다려온 《컴퍼니》가 드디어 막을 올렸다. 《스위니 토드》로 빠져든 손드하임의 또 다른 작품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이 동영상 하나만으로 바로 좋아하게 된 작품이기에 기대가 무척 컸다. 게다가 조기예매할인+카드사할인+쿠폰으로 매우 저렴하게 예매! >ㅅ<
 시놉시스를 간단히 언급하자면, 35살의 골드미스터 바비와 그의 친구인 다섯 커플, 세 여자친구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딱히 서사적인 줄거리가 있는 작품도 아니고, 여기에 보탤 내용도 없다. 다만 줄거리가 주는 느낌(흔한 로맨틱 코미디?)과 실제 공연을 보고 받는 인상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으니 직접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이 작품을 관람하면서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된 것은 무대가 참 독특하다는 점이다. 정방형의 무대에 긴 의자와 계단이 있는 장치 몇 개가 단출하게 놓여 있고, 그 위로 각양각색의 조명이 겹쳐진다. 고영빈 씨를 포함한 몇몇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동안 나머지 배우들은 무대 주위를 둘러싼 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대부분 묵묵히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며 어둠 속에 앉아 있지만, 때로는 무대에 반응하여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루나양으로서는 이 작품이 처음 올려졌을 당시의 무대 디자인이 어떠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아무래도 존 도일 연출의 영향이 반영된 ㅡ 성적인 표현이 다소 노골적인 것도 그래서인가? ㅡ 디자인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작년 국내 무대에 올려진 《스위니 토드》가 존 도일의 무대보다는 예전 방식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독창적인 연출을 가미한 것과는 대조적이어서 재미있다. (뱀발 - 그런데 도대체 피아노는 왜 있는 거지? -_-)

 바비 역의 고영빈 씨는 먼저 바람직한 수트 차림으로 루나양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셨는데, 약간 냉소적이면서 매력적인 싱글남의 역할에 딱이었다. 바비는 주인공이지만 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보다는 친구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그들의 결혼 생활을 관찰하는 역할이다. 그는 자신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극중 조앤의 말처럼 무엇이든 '해보려고' 구경만 하는 인물이자, 수잔의 말대로 그러한 관찰을 통해 내심 저울질해보고 검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영빈 씨가 다른 배우들과 달리 무대에서 떠나는 법이 없지만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바비의 캐릭터 때문인 걸까? 그렇다면 나름대로 인물 표현을 잘 한 셈인데, 반면에 극의 정점인 <Being Alive>에 생각했던 것만큼의 힘이 실리지 않아서 슬펐다.

 조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사실은 모든 배우가 검정색의 의상을 입고 나와서 극 중반까지 누가 누구 역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여하튼 가장 역할을 잘 소화한 조연이라면 조앤을 연기한 구원영 씨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원래 조앤이 튀는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그 캐릭터와 배우의 이미지, 연기가 매우 잘 어울렸다. (게다가 제일 스타일이 좋았다. +ㅂ+) 다음은 에이미 역의 방진의 씨. <Getting Married Today>는 가사도 많고 노래가 랩에 가까워서 영어로 노래하는 배우도 꽤나 숨차하던데 산소부족을 이겨내고 잘 불러주셨다.

 원래 이 작품은 전체 스코어에서 앙상블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은데, 이번 무대에서는 들으면서 부조화다 싶은 부분이 없지 않았다. 화성이 가장 만족스러웠던 곡은 <Side by Side>이고, 실망스러웠던 곡은 <You Could Drive A Person Crazy>다. 후자는 루나양이 <Being Alive>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넘버인데, 세 사람 중에 상대적으로 허스키한 음색의 난아(마르타) 씨 목소리만 튀었다. 혼자 따로 놀았다기보다는 나머지 둘이 너무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OST나 여타 콘서트에서 다른 배우들이 보여준 또렷한 가사 전달과 코믹한 제스쳐, 통통 튀는 발랄함이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렇지만 주연을 포함해서 전반적으로는 무리 없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공연이 좀 더 지속되고 배우들의 연기에 물이 오르면 또 다를 것이다. (달라진 앙상블을!) 재관람 여부는 추이를 봐서.
2008/06/01 21:11 2008/06/0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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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블데드》 후기 (0426)

2008/04/28 23:52, 글쓴이 LuNa
일시 : 4월 26일 오후 3시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캐스팅 : 조정석(애쉬), 김재만(스캇) 외

 포인트는 지난번과 다른 출연진으로 스플래터 존에서 관람했다는 것.

 일단 캐스트에 대한 감상을 써 보자면, 확실히 스캇 역에는 김재만 씨가 더 어울렸던 것 같다. 정상훈 씨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고(애초에 스캇은 그렇게 노래 많이 부르는 역할은 아니다) 코믹 연기가 훨씬 '덜 어색했다'. 첫 관람 때 그렇게 귀에 거슬리고 잘 안 들어왔던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서 1막 초반의 약간 지루한 인상을 덜어 주었다. 조정석 애쉬는 임강희 씨와 듀엣 부를 때 음색이 류정한 씨 때보다 잘 어울렸다. 아쉬운 점은, 1막에서는 자상한 연인이자 오빠, 친구였다가 2막에서 땀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거칠고 약간 마초적인 인물로 확 변해 버리는 애쉬라는 인물을 소화하기에는 조정석 씨 이미지가 너무 곱상했다. 원래 샤방한 얼굴을 어떻게 하겠냐마는 나름대로 변신에 성공한 류정한 씨 무대를 본 후라서 그런지 감흥이 덜했다.

 스플래터 존은 2차 오픈 놓친 후에 취소분인지 딱 1장 남아있는 걸 건져서 보러 간 건데, 전에 생각보다 피를 적게 뿌려준다는 후기를 보고 좀 실망했었다. 그런데 그새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책을 바꿨나 보다. 공연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가야 했기에 그냥 우비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는데 바닥에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바지와 가방이 젖지 않을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빈틈없이 우비로 방어막을 치고 있으니 김재만 씨가 다가와서 친히 손으로 머리에 (후드 위긴 하지만) 피칠갑을 해 주셨다. ㅜ_ㅜ 옆에 책상다리하고 앉은 사람은 우비 위에 고인 피가 한 컵 분량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피 맞으러 가는 분들은 필히 여분 옷과 수건과 물티슈와 페브리즈를 충분히 준비해야 할 듯. 얼굴이나 소매에 피 몇 방울 묻었을 뿐인데 물감 때문인지 약품 냄새 같은 게 심하게 난다. 그리고 피가 좀 따듯하면 리얼하고 좋을 것 같은데. 찬물이 우비 위로 흘러내려서 닭살 돋고 기분도 좀 그랬다. 그래도 바라던 대로 듬뿍 뿌려주니 일부러 흰 티 입고 모인 분들은 보람있었을 듯.
2008/04/28 23:52 2008/04/2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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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이블데드》 후기 (0330)

2008/04/01 00:35,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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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블데드 (Evil Dead, The Musical)



일시 : 3월 30일 오후 7시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
캐스팅 : 류정한(애쉬), 정상훈(스캇), 양준모(제이크), 임강희(린다), 최혁주(쉐럴), 백민정(셸리, 애니), 김승필(에드) 외

 1차 티켓 오픈에서 참패한(티켓파크의 만행 참조.) 후 의식적으로 신경을 끊고 있다가 보러 간 공연. 샘 레이미 원작의 공포 영화를 코믹 호러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공연 시작할 때까지 옆에 아무도 안 오기에 워낙 구석 자리라서 루나양 왼쪽에 앉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싶었다. 그런데 '죽음의 책'에 대한 나레이션이 끝나고 조명이 켜졌을 때 왜 옆에 류정한 씨가 앉아 있는 겁니까;ㅁ;! 그러니까 그 자리가 '숲 속의 오두막으로 여행가는 5명의 대학생'이 타고 있는 '자동차'였던 거다. 공연 리뷰도 미리 안 읽고 가서 이런 장면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처음부터 너무 놀라서 노래 한 곡 할 동안 입 벌리고 멍청히 있었는데 그 얼굴이 어땠을까 생각하기 두렵다.

 미친 듯이 웃겨준다고 했는데 1막 중반까지는 그저 그랬다. <슈퍼마켓 하모니>도 재미있긴 했는데 배를 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스캇 역은 조금 실망이다. 캐릭터 자체로 본다면 열심히 저속한 농담도 하고 깐죽대면서 웃음을 주는 감초 역할인데 그런 맛을 잘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나중에 등장하는 제이크가 더 제대로 된 조연 같았다. 하지만 쉐럴이 좀비로 변신하면서부터는 공연이 제대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간일 때와는 180도 달라진 쉐럴의 엽기적인 언행! 아, 정말 그때부터 엄청 웃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슬쩍 원작을 언급하며 공포 영화의 문법 자체를 비웃어주는 센스도 대단했다. 애쉬와 스캇이 탱고를 추면서 "조낸 퐝(fang)당해!"를 외치는 것도 너무 절묘해서 쓰러지고. (지금 회상해 보건대 이 장면에서 그 날 스플래터 존에 뿌려질 피보다 더 많은 땀이 뿌려졌다;;) 그리고 제이크 역의 양준모 씨! 이분 목소리 정말 좋다! 딱 루나양이 좋아하는 묵직한 목소리다. ㅜ_ㅜ 이 분 스위니를 보지 못한 것이 한이로다. 게다가 은근히 영화(이블데드 2)의 캐릭터와도 닮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2막은 1막보다 더 (웃기다기보다는) 신났다. 좀비들이 죽음의 춤을 추는 장면은 박진감이 넘치고 박수치는 관객 호응도도 높았고, 맨 오브 라만차 패러디에서는 그야말로 박장대소. 애쉬가 투지를 불태우는 노래 멜로디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가사가 "잘 알잖아 난 절대 안 죽어 주인공이잖아~"라서 다시 한 번 쓰러지고. 그런데 좀비들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에서는 화성이 잘 안 맞아서 가사도 좀 불분명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박살 내줬어!"에서 류정한 씨를 포함해서 배우들이 제대로 feel~ 받아서 하더라. 관객들도 덩달아 열광&환호 모드. 정상훈 씨 마이크가 나가서 아쉽긴 했지만, 앵콜에서의 역할 바꾸기나 지킬 앤 하이드 패러디도 좋았다.

 아직 몇몇 조연들은 캐릭터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고, 간간히 무대 장치나 소품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지만(그래도 배우들은 신경 안 쓰고 하더라. 대단하다.) 공연의 만족도 자체는 최상이다. 무엇보다 관객도 배우도 함께 즐기게 되는 공연이라는 것이 포인트다. 박수부대 교육받은 것도 아닌데 어쩜 그리들 손발이 척척 맞는지, 배우들 춤에서 손맛(?)이 느껴질 정도. 4월 중순으로 예매해 놓은 조정석/김재만 캐스팅도 무척 기대된다.
2008/04/01 00:35 2008/04/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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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짧은 후기

2007/12/13 23:43, 글쓴이 LuNa
벽을 뚫는 남자(Le Passe-Muraille)

일시 : 12월 12일 오후 8시
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캐스팅 : 남경주(뒤티율), 정명은(이사벨), 김성기(의사, 경찰, 변호사) 외

 '벽뚫남'을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시험 기간이라 같이 볼 사람이 없었는데 결국 친구 하나를 낚는 데 성공했지요. 원작인 마르셀 에메의 단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도 있고, 전에 공연했을 때 평도 좋았던 것 같아서 기대가 컸습니다.

 원작은 단편이라고 해도 짧은 편인데 두 시간짜리 뮤지컬로 만들다 보니 원래 줄거리에 보태진 내용이 많더군요. 일단 전쟁 후 뒤숭숭한 분위기의 파리라는 배경을 조성하고, 뒤티율의 직장 동료들, 경찰, 몽마르트의 주민들인 신문팔이, 거지, 매춘부 등 등장인물도 많아진데다가, 주인공의 로맨스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는 검사와의 대결 장면이 추가되었습니다. 확실히 스토리 라인이 더욱 유머러스하고 아기자기해진 느낌은 있었지만 에메의 원작에서 느껴지던 은근히 꼬아주는 어조나 기발한 느낌은 덜해진 것 같습니다.
 
 남경주 씨야 워낙 관록 있는 배우이니 달리 말할 것이 없네요. 그런데 제 말귀가 어두운 건지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내용 파악이 힘들 정도는 아니었지만요. 정명은 씨는 전에 《맨 오브 라만차 OST》를 들으면서 상당한 미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어보니 역시 그렇더군요. (부차적인 감상으로는, 너무 말라서 러브씬에서 남경주 씨가 안고 붕붕 돌릴 때 날아갈까 봐 걱정했답니다.) 그리고 조연들의 연기가 참 좋았는데요, 특히 김성기 씨의 의사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코믹 연기를 너무 능청스럽게 잘하세요. 다른 조연들도 1인 다역을 거뜬히 해내면서 캐릭터별 개성을 노래에서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세준 씨가 "나는 형무소 소자응~ 재미 없어응~"할 때 얼마나 웃었는지. 조정석 씨는 왜인지 여성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더군요(…).

 오랜만에 코믹한 뮤지컬을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결말이 많이 갑작스러운 느낌입니다. 책으로 읽어 결말을 알고야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황당하다고까지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긴 러브씬을 보여주고서(“어디서 커플질이야!”) 갑자기 그렇게 되니 알고 있었어도 헛웃음이 나더군요. 끝나고 나오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는 마음이 더더욱 허해졌습니다…….
2007/12/13 23:43 2007/12/13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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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뷰티풀 게임》 후기

2007/11/27 00:06,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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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게임(The Beautiful Game)

일시 : 11월 25일 오후 3시
장소 : LG아트센터
캐스팅 : 박건형(존), 김도현(토마스), 김동호(프랭크), 조진아(메리), 김소향(크리스틴)

 솔직히 이번 한국 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의 <The Beautiful Game> 무대와 간단한 시놉시스만 보고는 유쾌한 축구 뮤지컬이겠거니 하고 보러 간 루나양으로서는 얼떨떨한 심정입니다. 묘하게 '낚인' 기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네임 밸류와 '미남 배우 박건형'을 앞세운 홍보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작품을 전혀 다른 것으로 포장하는 솜씨는 대단하군요. (무슨 긴말이 필요할까요. 공식 사이트까지는 안 가보고 예매 페이지의 설명만 본 자신의 잘못입니다. N모 사이트에서 '뷰티풀 게임'으로 검색하니 아라시 멤버가 우스운 머리를 하고 출연한 사진만 잔뜩 뜨던데요. ㄱ-) 이런 포장을 벗겨내고 감상한 이 작품의 진짜 정체는 종교도 언어도 다른 ㅡ 아일랜드에서는 영국 성공회가 아닌 가톨릭을 믿지요. ㅡ 본토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북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대립과, 그 와중에 희생되는 개인의 행복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실화 뮤지컬이었습니다.

 1막까지만 해도 기대했던 대로의 작품인 듯했습니다. 지금은 동네 축구 선수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축구광 존과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우정에 가슴이 부푼 그들의 첫 경기(<The Beautiful Game>)에서는 흥분과 열기가 넘쳤고, 감초 같은 캐릭터 컬리의 깜찍한 기타 연주와 노래는 웃음을 자아냈지요. 특히 결승전 장면에서는 정말로 축구 동작을 연상케 하는 역동적인 안무와 동작, 슬로우 모션 등이 활기차고 유머러스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래에서 이 작품을 엄청 쪼아댈 예정이지만 적어도 안무만큼은 출중했다고 생각합니다. 2막의 감옥씬에서의 안무도 굉장했거든요. 깨져 버린 행복에 절망하고 점차 경직되어 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안무를 통해서 잘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컬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1막은 침통한 분위기로 끝나고, 이어지는 2막은 사랑에 숙맥인 존과 메리 두 사람의 첫날밤 장면이 약간의 웃음을 준 것 이후로는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꿈에 그리던 프로 축구 선수가 되려는 시점에 아일랜드 공화군(IRA)에 들어가 테러리스트가 된 토마스를 도와준 혐의로 체포된 존은 커다란 정치적 대립 앞에 산산조각나는 사랑과 꿈을 보며 좌절합니다. 한때 함께 어울려 '뷰티풀 게임'을 했던 친구들은 모두 이 '어글리 게임'에 휘말려 비극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긴 갈등과 반목의 과정에서 순수함을 잃고 타락하여, 혹은 영문도 모르고 희생양이 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는 친구들은 1970년대 격화된 북아일랜드 사태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주제로 들어가자면, 민감한 문제를 어설프게 건드려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이에요. 1막의 '사랑(우정)-갈등-사랑(우정)-갈등'의 반복과 2막에서 '사랑-갈등-절망-비극'의 패턴은 관객을 지루함으로 고문하는 건가요.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것은 아마도 두 상황을 대조적으로 드러내서 주제를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생각보단 잘 풀리지 않은 듯하네요. 그냥 ALW답게 상업적이란 소리를 듣든 말든 클리셰로 잘 포장을 해서 내놨으면 뻔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줄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성공하지 못했지요. 예컨대 1막의 분위기를 이어가서 유머를 간간이 양념으로 사용하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든가, 아니면 많은 영화가 그렇게 하듯이 아예 신파로 만들든가 했다면 1막과 2막의 크나큰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신함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부정적입니다.

 캐스팅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프랭크-크리스틴' 커플은 듀엣에서 음색이 참 안 어울리더군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주인공 커플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기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연기를 하기보다는 캐릭터의 이미지 형성에만 급급한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나마 토마스나 컬리는 캐릭터가 확실히 잡혀 있어서 괜찮았지만 나머지는 원작자가 의도했던 감동을 살리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배우들 탓만 할 수는 없어요. 서툰 구성과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넘버가 없다는 사실도 한몫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예전 같지 않다지만 ALW 작품답지 않게 기억나는 넘버가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안무와 무대, 배우들의 관객 서비스에 의존했지만 각본과 음악은 그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습니다. 전에 Patti LuPone이 《선셋 대로》 웨스트엔드 공연의 참담한 실패에 대해 '자신의 커리어에 사로잡힌 작곡가의 강박증'을 언급한 바 있는데, 그저 개인적인 악감정의 표출이라고 가볍게 흘려듣기에는 뼈아픈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는 저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앤드류.
2007/11/27 00:06 2007/11/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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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마르크 합창단 내한공연 감상

2007/11/02 23:48, 글쓴이 LuNa
 - KB 카드에서 이벤트로 티켓을 엄청 뿌렸더군요. (루나네 식구들에게는 당첨 운이 좀 따릅니다.) 원래 합창곡을 즐겨 듣는 루나양인지라 덥석 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고 와서야 본인의 취향은 대규모 성인 합창이지 소년 소녀 합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말 예쁘더군요.

 - 공연이 처음에는 매우 썰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박수도 전혀 없이 서너 곡을 넘겼는데 조금 민망했어요. 하지만 독창자들이 나와서 고운 목소리를 들려주자 그제야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지요. 레퍼토리가 다양한 편이었는데, <Voca me>, <Heureux>, <Une chanson douce>, <In memoriam> 같은 곡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카치니의 <Ave Maria> 같은 유명한 곡도 있었는데 두번째 독창자가 매우 힘겨워하더군요. 포레의 파반느를 개작한 <Isabel>도 마음에 들긴 했는데 오케스트라 소리가 너무 커서 합창이 묻히는 것 같았습니다.

 - 독창자 중에 십대 후반의 에드워드 노튼에 포샵질을 한 것처럼 생긴(…) 아이가 있었는데, 단원 중에서는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지만 정말 꾀꼬리같이 목소리가 고왔습니다. 독창도 가장 많이 했고요. 공연 후에 사인회를 한다고 해서 브로셔에 사인 받으면서 "Tu étais brillant."이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려고 했건만 가장 어리고 예쁜 얼굴 마담들만 골라서 내보냈더군요. 이러깁니까! OTL

 - 공연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국립 극장 용은 전에 갔을 때도 음향이 그리 좋지 않다고 느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이크 음량이 갑자기 커진다든가, 조명이 늦게 들어온다든가 하는 기술적인 실수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관객들 중에 감기 걸린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마음 편히 가래도 뱉고요. (독창자 중에 감기 걸린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노래 부르다 기침하자 갑자기 사람들이 따라서 기침을 했답니다. -_-;) 그리고 시작할 때는 민망할 정도로 박수 안 치다가 애들이 하나씩 나와서 예쁜 짓 한다고 노래 끝나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쳐대면 노래가 묻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쩌라는 건지. 꼭 재롱 잔치 보는 기분이었어요.
2007/11/02 23:48 2007/11/0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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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위니 토드》 후기

2007/10/10 02:00,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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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Sweene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일시 : 10월 9일 저녁 8시
장소 : LG아트센터
캐스팅 : 류정한(스위니 토드), 홍지민(러빗 부인), 임태경(안소니), 유에스더(조안나), 토비아스(홍광호)

   오늘의 20자 평 : 러빗 부인이 스위니 토드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한동안 OST만 들으며 대리만족을 추구하다가 결국 지르고야 만 공연. Sing-along이 안된다고 불평한 적도 있었지만 계속 듣다보니 은근히 뇌리에 박히는 중독적인 음악과 실제 공연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루나양을 이끌었습니다. 가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는 후기를 많이 읽었는데 예습(?)을 하고 가서인지 몰라도 생각만큼 곤란을 겪지는 않았고, 번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A Little Priest〉에서 각운 맞추기를 포기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요. 받아칠 대사를 찾지 못해서 굳어버리는 스위니를 보고 싶었는데요.) 하지만 〈Kiss Me〉같은 곡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버벅거려 주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했답니다.

 "등골이 오싹할 얘기. 시퍼런 눈빛의 한 남자…"로 시작되는 한 남자의 복수극.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판사 때문에 유형을 살고 딸까지 빼앗긴 재능있는 이발사 벤자민 바커.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 돌아왔지만 정든 도시는 이미 거지들과 위선자들이 드글거리는 음험한 곳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전부터 바커를 사랑해왔던 러빗 부인은 돌아온 그를 반기며 이발사 일을 하게 도와 주고, 스위니 토드로 다시 태어난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합니다. 핏빛 복수극에 스위니의 딸 조안나와 안소니의 로맨스, 사회 풍자적인 유머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인터미션까지 합쳐서 3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이지만 지하철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잠시 잊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20자 평에 적은 대로, 이번 공연에서는 러빗 부인 역을 맡은 홍지민 씨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영리하고, 사악하고, 주책맞고, 전반적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한 인물인데, 이를 어찌나 능청맞게 잘 연기하는지 스위니 토드 역의 류정한 씨가 오히려 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랄까, 장악력이랄까 그런 점에서 홍지민 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말이지요. (게다가 커튼 콜에서의 팬서비스 ㅡ 도둑 키스(!) ㅡ 에서마저 압도해 주셨으니 이를 어째ㅠ_ㅠ*) 루나양이 편애하는 러빗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해미 씨 캐스팅을 보려다가 시간이 적당하지 않아서 나름대로 호평을 받고 있는 홍지민 씨 캐스팅으로 건너갔는데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주인공이 위축되었다는 느낌은 있지만(류정한 씨가 요새 살이 빠졌는지 엄청 수척해 보여서 더 그랬습니다), 류정한 씨도 〈Epiphany〉에서 실력 발휘를 해 주셔서 그나마 균형이 이루어졌달까요. 집에 오는 길에 "다들 죽어도 싸지" 멜로디가 자꾸 귀에서 맴돌아서 난감했습니다.

 사실 루나양이 러빗 부인을 편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코믹, 스릴러, 호러, 로맨스를 아우르는 전천후 캐릭터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는 점이 포인트. 연애세포 어딘가가 비뚤어진 루나양은 러브 트라이앵글도, 링도 아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러브 라인,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 하지만 누구 하나 보답 받지 못하는 이런 종류의 관계를 좋아합니다. (물론 현실 말고 작품 상에서요.) 파이널 시퀀스에서 러빗 부인이 "Yes, I lied 'cause I love you!"라고 외칠 때 소름이 돋았던 것도 그 때문. ("사랑해요"는 조금 임팩트가 덜했지만요.) 〈By The Sea〉는 또 얼마나 슬픈 곡인가요. 유머러스한 인물이 이런 역을 겸하니 비극성이 더욱 배가됩니다.

 러빗 부인을 사랑하는 토비 역의 홍광호 씨도 상당히 호연해 주셨는데, 조금 모자란 인물을 연기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Not While I'm Around〉에서 좀더 부드럽게 불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피렐리가 등장하는 부분은 참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안소니 역의 임태경 씨도 상당히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역시나 〈Kiss Me〉에서는 조안나 역의 유에스더 씨와 호흡이 잘 안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네요. 워낙 빠른 곡인데다, 번안한 가사를 원곡 리듬으로 부르는 고충은 이해가 갑니다.)

 캐릭터도, 스토리도 빈틈없는 작품이지만 새삼 루나양을 감탄하게 했던 것은 무대 장치였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철골 구조물처럼 생긴 것이 작품의 음산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조하기도 하고, 별다른 장치가 필요 없이 갖가지 배경 역할을 다 해내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스위니의 이발소와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를 동시에 보여주는 2층 구조물도 그렇고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도 멋있었습니다. 그 철골 뒤에서 비치는 붉은 조명, 주요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대야에 손을 씻고, 허깨비 같은 롱코트의 그림자들 가운데 선 스위니 토드가 복수는 저주를 낳는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각인이 되어 남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기립박수가 터지고 난리가 났는데, 그럴 만한 공연이었습니다. 위험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좋은 배우들과 만났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요. 막 내리기 전에 이 캐스팅으로 다시 보고 싶은데 과연 기회가 또 닿을지 미지수라 암담해집니다(…)
2007/10/10 02:00 2007/10/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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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짐》 후기

2007/09/21 22:59, 글쓴이 LuNa
연극 《짐》 (극단 물리)
각본 : 정복근
연출 : 한태숙
장소 : 남산 드라마 센터


 <판타스틱> 홈페이지 이벤트에 당첨되어 보게 된 공연. 안 그래도 공연이 고팠던 터라 ㅡ 연극관람은 거의 석 달 만이다 ㅡ 잘 되었다 싶었다.

 어둠 속에서 뻗어나온 한 줄기 희미한 조명, 반라의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나와 서로 안고 업고 던졌다가도 다시 매달린다. 이때만큼은 연극이 시작부터 끝까지 전위예술로 가는 것이 아닐까 정말 불안했다. 전에 한 번 시놉시스만 보고 스토리가 있는 작품이겠거니 하고 보러 갔다가 얼이 빠져서 나온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런 유의 작품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서 생각해 보니 의외로 오프닝의 이 장면이 상당히 의미있었다. 무대 한가운데 흉물스럽게 놓여 있는 '짐'이라는 물체 그 자체보다는, 내던지고 뿌리쳐도 다시 돌아와 매달리는 사람들, 자꾸 노망부리면 버리고 도망간다는 손자의 말에 '붙잡고 늘어져서 놓지 않을 것'이라는 할머니의 대사가 이 작품의 '짐'에 더 가깝다.

 어느 날 요시코라는 여인이 보내온 오래된 짐꾸러미. 50년 전 할아버지가 해변에서 주워와 보관하고 있던 짐이라는 모호한 설명에 윤식은 자기 것이 아니라며 돌려보내지만 소용이 없다. 서로 짐을 반송하며 편지로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두 사람. 그 사연은 광복 후 강제징용되었었던 사람들을 부산항으로 실어나르기로 되어 있었던 우키시마호 폭파 사건에 얽혀 있었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듯한 요시코의 할아버지와 노망나서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윤식의 할머니가 감상의 포인트.

 두 사람의 실랑이 가운데 유령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나 과거의 사건을 재현한다. 그동안 자행된 일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한 일제에 의해 우키시마호는 일부러 연료도, 승무원도 없이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위험 수역으로 보내지고, 승선한 7천 명의 조선인들은 그대로 수장되고 만다. 특유의 비장한 분위기와 죽음의 절박함 때문에 재난 영화도 보기 싫어하는 나인지라 사람들이 발버둥치다가 팔다리를 위로 하고 천천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연기는 유령들이 해변에서 구슬프게 우는 장면보다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무서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데 같이 간 셀린도 동의했다.)

 요시코의 할아버지는 조선인들이 타고 갈 배에 관한 흉흉한 소문을 들었지만,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 결국 알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요시코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고통받고, 태중에 있는 아이도 나중에 그런 고통을 물려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윤식의 할아버지는 위안부로 끌려갔던 누이가 돌아오면 '집안의 수치'인지라 양잿물을 먹여 뒷동산에 파묻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윤식의 할머니는 시누이의 편지를 감추어 버린다. 윤식 역시 '구질구질하고 혐오스러워서' 과거의 일들을 햇빛 아래 직시하는 것을 피하려 한다.
 버려도 버려도 되돌아오는 짐, 결국 마지막까지 풀어보지도 못하고 서로 떠넘기려 하는 짐은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윤식의 말대로 잘 '삭여서 발효시키면' 그제야 묻어버릴 수 있는 부드러운 흙이 된다는 것인지. 그동안 누누이 언급되어왔던 과거의 '빚'과는 분명 다른 문제일 텐데.

 인터미션이 없는 75분 정도의 짧은 공연이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딱히 깔끔한 결말이 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여기서 끝내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정확히 끝나 버려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조명이 밝아지고 배우들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왠지 갈채에 동참할 기분은 나지 않았다. 공연 내내 깔려 있던 무거운 분위기를 박수로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도 좋은 공연에 대한 답례로 열심히 치기는 했다.)

2007/09/21 22:59 2007/09/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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