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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아바도, 브루크너 교향곡 7번

2006/07/06 18:49, 글쓴이 LuNa
Ludwig van Beethoven
Piano Concerto No. 3 in C minor, Op. 37
Anton Bruckner
Symphony No. 7 in E major, WAB 107

Claudio Abbado(지휘)/ Lucerne Festival Orchestra

 며칠 전 월말까지 써야 하는 메가박스 영화 쿠폰을 사용하러 오랜만에 (집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코엑스에 갔습니다. 마르쉐 앞에서 친구 녀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도무지 오질 않더군요. 방학을 맞은 지 얼마 안 된 이 친구는 방학 직후 폭면(?)때문에 흐트러진 생활 리듬 때문에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거지요. 한 시간 반가량을 혼자서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루나양. 코엑스에 혼자서 올 때면 항상 들르곤 했던 에반 레코드에 들렀습니다. 팝/락 코너를 지나 DVD 신보를 잠시 구경하고, 그 너머에 있는 또 하나의 유리문 ― 그러니까, 낙원의 문 ― 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루나양을 반겨주는 차분한 공기에 감격하면서 낙소스 신보부터 훑어주며 아이쇼핑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루나양의 귀로 흘러들어오는 익숙한 음악이 1학년 2학기 "낭만파 음악 산책"이라는 강의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교향곡 하나를 통째로 외워서 그 중 30초씩을 듣고 악장과 그 위치를 알아맞히는 (15문제에 무려 30점짜리) 시험과, 그 때문에 난생처음 교향곡 악보를 손에 쥐고 멜로디 라인만이라도 외워보겠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던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에반 레코드 클래식 코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바로 그 문제의 시험곡, 브루크너 7번 교향곡이었지요. 클래식 입문자답게 교향곡보다는 피아노 혹은 바이올린 소품이나 성악곡을 선호하던 루나양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무한반복해서 감상한 교향곡이 되겠습니다. 처음에는 DVD 스크린을 흘끗 보고선 다시 앨범 목록을 훑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예전에 무식하게 외웠던 주 멜로디 라인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 루나양.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겠다, 매장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감상을 시작했습니다.
 루나양이 시험을 위해서 무한 재생했던 음원은 첼리비다케의 연주였는데, 이번에 접하게 된 것은 아바도의 것이었습니다. 매장에서 틀어주는 것을 보면 신보일 거라고 추측했지요. 그래서일까, 아바도 선생님 많이 늙으셨더군요. 뭐, 예전에도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촌로 같은 인상이 되어버리셨습니다. 역시 모든 지휘자에게 가디너 경이나 카라얀 같은 미노년으로 늙어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겠지요? (게다가 아바도 슨생님의 투병생활을 생각하면 더 그렇군요.) 예전에는 아바도에 대해서 그 평범한 인상만큼이나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던 루나양이었습니다. 건방지게도 지금까지 아바도를 ‘그저 무난한 지휘자’라고만 여겨왔던 빈약한 안목이 이제서야 넓혀지려는 것이었을까요? 루나양이 듣기 시작한 것은 2악장 아다지오의 중반쯤부터였는데, 침잠과 상승이 반복되는 아다지오 악장 전체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오면서 절절하게 느껴지더군요. 그 장중함과 간곡함이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바도를 다시 보기 시작한 루나양. 가디너 경보다는 못한() 평범한 외모에도 왠지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다지오가 끝나고 스케르초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두 손을 모으고 단원들을 향해서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바도 선생님이 얼마나 친근해 보이던지. "우리, 다음 악장도 잘 할 수 있죠?"라고 묻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시작된 스케르초 악장. 힘차고 씩씩한 ㅡ 마구 달리는! ㅡ 악장이라서 루나양이 좋아하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도입부의 트럼펫 솔로가 첼리비다케만큼 우렁차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지만, 이윽고 관/현악기가 총동원되어서 마구 달려갈 때 즈음에는 그런 실망 같은 것은 까맣게 잊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요. 아바도가 극적인 면이 부족한 지휘자라는 루나양의 편견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3, 4악장에는 푸르트뱅글러 냄새가 나서 시대착오적이라고 하는 분도 계시던데, 그 정도의 식견이 없는 루나양에게는 그저 좋았습니다.)
 친구를 기다리는 지루함도 짜증도 모두 잊게 해준 아바도 슨생님, 고마워요 :) 슨생님의 말러 연주도 언젠가는 꼭 들어볼게요.


덧. 이럴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에반 레코드 클래식 매장에서 알바하고 싶어요. ㅠ_ㅠ 시원하고 한산한 매장에 앉아서 신보를 보고 들으며 ㅡ 게다가 신간 클래식 잡지도 마음껏 볼 수 있다죠 ㅡ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지상낙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06/07/06 18:49 2006/07/0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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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ing Quartet No.1 Romance ㅡ Vaughan Williams

2006/06/20 20:03, 글쓴이 LuNa
Vaughan Williams(1872-1958)
: Phantasy Quintet*
: String Quartet Nos. 1 & 2
Maggini Quartet/ Garfield Jackson(viola)*
Naxos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곡을 소개하는 지금도 작곡가인 본 윌리암스에 대한 루나양의 지식은 전무에 가깝습니다. 이 곡을 처음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러를 두고 '그런 대로 봐줄만한 사이비 작곡가'라고 혹평한 영국인 음악가 하나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사람은 남에 대한 평가를 내릴 때 신중해야 한다는 소박한 교훈을 하나 새기고 넘어가지요. 혹시 압니까? 선구자적인 위대한 인물을 몰라본 우매한 세인들에 대한 일화를 하나 늘리게 될 지.) 앨범을 구입한 덕분에 이 사람이 한때 모리스 라벨과 브루흐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알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작곡가의 스타일은 이렇더라' 운운할 만큼은 아니지요. 이 앨범에 든 곡들 외에 다른 작품을 들어보지도 못했고요. 그래서 루나양이 제일 처음 매혹당했던 이 곡에 대해서만 간략히 감상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염가 음반계의 희망이자 지름신의 사도 ㅡ 루나양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ㅡ 낙소스에서 나온 앨범들로 레파토리 늘리기에 재미를 붙인 루나양은 어느 날 그에 합당한 보상, 낙소스 샘플러를 받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저런 음반사의 샘플러나 카탈로그 모으기에도 재미가 붙은 듯. 아무리 염가 음반이라지만 카탈로그를 훑기 시작하면 위시 리스트 총계가 장난 아닙니다.) 그 샘플러에 들어있던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곡, 본 윌리암스의 〈현악 4중주 D단조 No.1 - Romance : Andante sostenuto〉였지요. 그 전까지는 낙소스 음반 특유의 ㅡ 어떤 분은 디지털 레코딩 방식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던데, 정말 그런가요? ㅡ 차가운 듯한 울림이 현악기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 곡을 만나면서부터 그런 생각은 확 바뀌었습니다.

 이 곡의 미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꾸준하다?! 곡의 첫부분은 정적 속에서 다소 심심하게 시작됩니다. 결코 즐겁다거나 경쾌하다고는 표현할 수 없고, 반대로 딱히 애수에 찬 선율도 아니지요. 하지만 네 대의 현악기는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꾸준하게 서로 얽히며 청자를 이끌어 갑니다. 피치카토마저도 아주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러나 이 절제된 음 다음에는 그동안 충실히 준비해 온 상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려 왔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결코 성급하지는 않게 착실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바이올린과, 그의 뒤를 받쳐주는 저음의 현악기들이 상승과 하강으로 엇갈리며 포물선을 그립니다. 이런 극적인 순간을 뒤로 하고도 여전히 답답하리만큼 꾸준하게 주멜로디를 반복하는 현들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시작 선율과 반대의 부분에 도달할 때까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하품날 정도로 지루한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꾸준하고 성실한 네 현악기가 만들어 내는 조화는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좋은 구성이라든지, 작곡법이라든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곡의 전개에 대해서는 대강 이 정도 감상으로 넘어가고 정작 루나양을 매혹시킨 소리에 대해서 잠깐 짚고 넘어갑시다. 외롭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던 도입부와는 달리 곡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풍부해져 가는 네 현악기.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의 선율은 낙소스 레코딩 전반에 맴도는 차가운 울림 속에서 특히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차가움 속에서 가늘지만 날카롭지는 않은 바이올린의 고음이 떨릴 때에는 숨이 멎을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되지요.

 이 곡에 매혹되어 현악 4중주 1,2 번과 판타지 5중주가 수록되어 있는 앨범까지 사 버렸지만, 역시 첫사랑이 제일이라고[틀려!] 이 트랙보다 마음에 드는 곡을 찾을 수가 없네요. (로망스는 정말 잘 들었어요.)
2006/06/20 20:03 2006/06/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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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2x17 All In

2006/05/02 21:06, 글쓴이 LuNa
 지난 15화부터 하우스 박사님과 윌슨의 관계 급진전중?! 박사님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는 윌슨의 유머 감각을 되찾아 주는 16화도 좋았지만 ㅡ 루나양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둘 사이에는 불꽃이 튀었다구요! ㅡ 이번 화에서는 박사님이 얼마만큼 다른 사람을 파악하고 그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새삼 상기하게 되었답니다. 별 거 아닌 증상으로 입원한 6살 난 소년에게서 12년 전 자신이 끝내 치료할 수 없었던 73세 할머니와의 동질성을 발견한 하우스 박사님. 고칠 수 없었던 미지의 증상들을 떠올리며 소년의 치료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됩니다. 커디 원장님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마침 그녀와 포커 중이던 윌슨을 이용하는데, 이제부터 박사님의 놀라운 원격 조종술이 펼쳐집니다!

이미지의 압박


 해묵은 원한을 해소하듯 그토록 집착하던 문제의 답을 알아낸 하우스 박사님. 이번 화 내내 보여준 강박적인 모습과는 다른 밝고 환한 미소를 보여주셨어요/ㅂ/ 마지막에 피아노 치는 장면이나, 파티가 파한 후에 윌슨과 단둘이 남아 포커를 치는 장면도 마음에 들었구요. 역시 이 둘은 너무 사랑스러워요!
2006/05/02 21:06 2006/05/02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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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다시 쓰기와 목소리

2006/04/19 02:38, 글쓴이 LuNa
『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ㅡ 크리스타 볼프 지음, 김재영 옮김/ 황금가지
『페넬로피아드』ㅡ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루나양에게 신화는 무한대의 창조력을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그 신비로운 이야기들로 수많은 사람들을 홀린 것도 모자라, 오늘날에 와서도 끝도 없이 그 자손들을 생산해내고 있지 않은가. 고색창연하면서도 결코 생동감을 잃지 않는 이 이야기들은 접하면 접할수록 친근함이 느껴지면서도 그때마다 새로우니 아이러닉하다고밖에. 이제는 밑천(?)이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겠냐고 생각한 건 루나양의 착각이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두 작품을 만났다.

 이 두 작품의 제목에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여성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의 이름에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메데이아와 페넬로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원래 신화에서 메데이아는 사랑 때문에 나라와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남동생을 죽여 그 시신을 바다에 뿌리며, 이아손의 사랑을 잃게 되자 상대 처녀를 독살하고 나중에는 테세우스 신화에도 등장해 그 사악함을 뽐내(?)는 전형적인 악녀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바다에서 떠돌아다니는 20여 년 동안 기지를 발휘하여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절개를 지친 현모양처로 칭송받는다. 그런데 이토록 다른 두 사람, '마녀' 메데이아와 '정숙한' 페넬로페가 각기 할 말이 있다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 그토록 하고 싶어서?

 지금쯤 눈치 챘을 테지만, 이 두 작품은 '신화 비틀기', '신화 다시 쓰기'의 결과물이다 ― 모두들 알고 있는 이야기 이면에는 어떤 뒷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내 이야기를 써 줘’라고 눈짓을 하는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걸까? 이러한 상상력의 자극을 통해 새로이 탄생한 신화는 반(反)신화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참신하면서도 흥미롭다. 다시 쓰인 신화에서 악녀 메데이아는 오히려 국가적인 범죄의 희생양으로, 영웅 오디세우스는 방탕한 거짓말쟁이로 그려진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아무래도 억압받는 여성들의 호소가 아닐까 싶다. 남성 영웅 중심의 신화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그 들러리 아니면, 영웅이 가진 고귀한 덕성에 대비되는 존재로만 그려져 왔다. 아니, 아예 이야기 속에서 아무런 중요한 위치도 차지하지 못하는 인물들보다는 나은가? 어쨌든 신화는 그런 식으로 전승되었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의 지위는 너무나 확고해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야기해왔던 것들을 감히 엉터리라고 부르는 이 여인들은 누구인가? 신화 속 여성의 유형 중 페넬로페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메데이아는 분명 후자다. 억울한 것으로 치자면야 메데이아가 먼저일 터. 하지만 『페넬로피아드』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열두 명의 (이름도 모를) 살해당한 처녀들이 있지 않은가? 한데모인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두 작품은 장 구분에 따라 수시로 서술자가 바뀌어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것이 불러오는 효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페넬로피아드』의 경우, 페넬로페의 넋두리에 가까운 독백과 열두 명의 시녀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교차하면서, 페넬로페에게 점점 공감을 느끼는 한편 시녀 살해 사건의 진상이 어떤 것인지 ― 시녀들과 페넬로페의 진술은 서로 다르므로 ―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 위트가 부족한 법이 없다. 사실 이 작품에 배어있는 풍자와 유머는 ― 내용의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반면 『메데이아』에서는 메데이아 자신과 이아손, 그리고 그녀를 파멸시키려는 아카마스와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이 각기 드러나면서, 메데이아를 죄어드는 사악한 계획에 전율하며 그녀가 파멸하는 과정에 하나하나 동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하여 결국 그녀가 추악한 계획에 빠져들었을 때, 그것을 하나의 숭고한 비극으로 받아들일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운명은, 적어도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좋은 비극이 될 요소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믿는다.)

 '신화 다시 쓰기'의 매력은 여기 있다. 이 뒤집어진 신화는 단순히 잘 아는 이야기의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찬란한 신화의 그늘 아래 억눌린 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목소리를 통해 독자는 원래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폭력성을 탐지하고 이야기 속에서 보다 다층적인 의미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신화와의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2006/04/19 02:38 2006/04/1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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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2x15 Clueless

2006/04/09 18:04, 글쓴이 LuNa

 솔직히 말해 이번 화에서는 케이스 자체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하우스 선생의 삐딱한 지론 ㅡ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정말로 행복한 커플은 없다"(이런 것도 있었던가?) ㅡ 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환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거짓이나 비밀이 들통 나면서 병도 고쳐지는, 이런 전개도 슬슬 진부해지기 시작하네요. 게다가 메인 스토리의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엇나가는 재미를 주는 미니 스토리도 이번 화에서는 싱겁기 그지없군요. "것 봐, 내가 뭐랬어."하는 박사님의 의기양양한 모습도 어쩐지 씁쓸하고. 결국은 윌슨과 하우스 사이에 튀는 불꽃을 관찰하는 것이 이번 화의 초점! (누가 그래?)

 부인의 외도를 알고 난 후 하우스와 임시 동거를 시작한 윌슨. 하지만 예상대로 사교성 제로의 깐깐한 박사님은 하루 만에 윌슨을 내보내려 하는데!

꼭 이렇게 틱틱대야겠어요? 좋아하면서 말이죠.

이 정도로 물러나면 아니된다, 윌슨!


(more) 윌슨은 어떻게 박사님을 구워삶았나!


2006/04/09 18:04 2006/04/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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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 잡생각들.

2006/03/26 16:21, 글쓴이 LuNa
 1. 윤서는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캐릭터가 아닐까. 무료한 일상에 지치고 현실의 압박에 무력한 그이지만, 얼토당토 않은 필명으로 잡스러운 글을 써서 돌릴 때 만큼은 '작가' 행세를 할 수 있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사람에게 그깟 음란 소설 작가라는 타이틀이 뭐 대수겠냐마는, 그는 그마저도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자기 책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에 엄청 집착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소설의 지명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곯머리를 앓는 윤서의 모습은 조회수나 댓글에 은근히 신경쓰며 실망하기도, 실없이 좋아하기도 하는 네티즌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자기도 남에게 얻어들어 배운 걸 초짜에게 가르쳐주며 은근히 잘난 척하는 귀여운 모습도 닮았다. 영화 보는 내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조금 우습기도 하고 떫기도 했다.

 2. 가장 강렬한 캐릭터는 왕과 내시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평생 곁에 두고 보기 위해 남자를 포기한 조내관과 결코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여인을 권력으로 소유하고 있는 왕. 둘 중 누가 더 가여울까. 차라리 조내관은 남자를 포기함으로써 그녀를 평생 볼 권리와, 때때로 그녀와 함께 정답던 과거를 회상하는 소소한 기쁨이라도 즐길 수 있었을 터. 그럼 결코 자신을 봐주지 않던 정빈의 눈이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을, 자신이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을 감내해야 했던 왕은? 사실 왕의 첫인상은 냉혹하고 잔인한 군주의 표본이었다. 자신의 명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아 반송장이 된 자의 친형을 불러놓고 그 앞에서 하찮은 일인 양 지나가는 말을 던지는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러나 그는 두 연인 뒤에서 완전히 잊혀진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약자라 칭한다. 그는 권력으로 정빈을 강제로 소유할 수도, 연적인 윤서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전락시키는 일이었겠지.

 2-1. 왕이 보는 앞에서 윤서와 정빈이 사랑을 확인하는 ㅡ 이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 ㅡ 장면에서는 왕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그가 떨면서 "내 앞에서, 나를 앞에 두고…"라고 할 때 도대체 왜 사람들이 웃었던 걸까?

 3. 하지만 역시 윤서와 정빈의 로맨스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물론 정빈에 대한 윤서의 미묘한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남자에게 있어) 성욕과 사랑은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작품을 위해 정빈의 성적 매력을 이용한 그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사랑하는 여인과의 잠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엿보게 하고, 그것을 쓰고 그려 뭇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뒤틀린 것이고, 단지 음심이라고 한다면 철저한 농락이다. 따라서 후반부에서 음심인지 사랑인지 구별할 수 없어 사랑한다 말하지도 못하고 다만 내생을 기약한다는 윤서의 말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 인물은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가에 대해 뉘우치는 기색은 없고, 위와 같은 겉만 번드르한 말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동시에 정빈은 '사랑한다'는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연인을 고문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불쌍한 정빈.) 영화 내내 품고 있던 윤서에 대한 공감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정빈은 "그러면 되었습니다."라고 눈물을 흘리고, 정말로 그걸로 끝이다. 도대체 이 대면을 통해서 뭘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차라리 이때 윤서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이렇게까지 싫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4. 결론. 때로는 어설픈 해피 엔딩이 배드 엔딩보다 못할 때도 있다.
2006/03/26 16:21 2006/03/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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