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 - 루시앙 골드만 저/ 송기형 역/ 연구사
왜 라신의 비극이 그토록 내 취향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난 고등학생 시절 파스칼의 『팡세』에 빠져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나의 취향을 피력했었고, 지금은 그때와는 사뭇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는 변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골드만이 라신과 파스칼, 루카치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비극적 세계관의 모든 것이 나를 매료한다. 더불어 작년에 문피아에서 연재될 때 그렇게 열광했던 『레드 세인트』와 『루나틱 언밸런스』가 이런 비극적 세계관을 놀라울 정도로 ㅡ 상당히 노골적인 수준으로 ㅡ 투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정말 취향은 어디 가질 않는구나. 지금은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을 읽고 있다. 이걸 읽고 나면 번역되지 않은 『숨은 신』의 뒷부분을 마저 읽어야지. 뭐랄까, 읽는 순서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비전공자이니 기호와 흥미와 변덕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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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29 100729 숨은 신
- 2010/07/10 100709 파괴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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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27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Making Money (5)
- 2009/10/26 091025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후기 (1)
- 2009/09/11 오디언 작품 간단평 (2)
- 2009/01/07 Mentalist
- 2008/12/31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시르트의 바닷가
- 2008/12/26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 2008/10/14 낙소스 앨범 두 장 : 무곡 (4)
100709 파괴된 사나이

둘.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알프레드 베스터의 『The Demolished Man』이었는데, 정작 영화의 영어 제목은 《Man of Vendetta》였다. 관객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어주는 부분이다. 단적으로 말해 '복수'라는 주제는 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오로라 공주》에서처럼 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계획된 엄중한 복수를 감행하는 것도 아니요, 《테이큰》에서처럼 딸을 구출하기 위해 완전한 무법자가 되어 통쾌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주영수(김명민)가 최병철(엄기준)의 집을 찾아가는 결말부에서는 대단한 액션도 스펙타클도 없다. 분노에 찬 아버지의 통쾌한 복수를 기대한 관객은 생각보다 시시한 결말에 맥이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복수보다는 한 남자가 믿음을 잃고, 이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주영수는 딸 혜린을 잃음으로써 목사로서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아내를 떠나보내고, 삶에 대한 경건한 태도를 버렸다. 혜린의 생존이 확인된 이후에도 아직 그에게 잃을 것이 남아 있었던 양 모든 것이 눈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시의 적절하게 다가오는 듯 보였던 공권력으로부터의 도움의 손길도 바로 눈앞에서 차단되고 만다. 반면에 영수와 대치되는 캐릭터로, 그의 아내인 민경은 시종일관 혜린의 생존에 대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신앙을 고수한다. 어떤 통찰력이나 직감의 힘을 빌려서인지는 몰라도 다른 유괴 사건과 딸의 사건 간의 관계성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살아있는 혜린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그녀이다. 살아있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백 번 천 번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며, 실제로 자의든 타의든 딸의 구출을 위해 목숨을 잃는 그녀는 신앙에 목숨을 버리는 순교자나 다름없다. 그녀와 유괴범을 포함한 모든 상황이 영수의 믿음을 시험한다. 말을 다시 하게 된 혜린이 아빠에게 물어오는 것도 다름 아닌 믿음의 확인이다. 이렇게 해서 관객은 어떻게 한 남자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되찾는지를 보게 된다.
셋. 김명민의 연기는 확실히 관객을 끌어당긴다. 그의 매력은 자로 잰 듯 반듯한 인물보다는 상처입고 일그러진 인물을 연기할 때 더욱 살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시나리오만 보면 딱 작년에 개봉한 《이태원 살인사건》 꼴 나기 좋았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이제 좀 괜찮은 작품에 출연할 때가 되지 않았나. 대작까지는 아니라도 '김명민 없었으면 망했을 영화' 소리 안 들을 만한 작품에.
김명민의 경우보다 안타까운 것은 엄기준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최병철이라는 인물에게서 캐릭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놈 목소리》도 아닌데, 병철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 살인자의 또렷한 얼굴이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뿐이다. 그의 동기는 한 마디로 설명된다. '호사 취미를 가졌음.' 그의 성격도 모호하다. 그는 상황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을 바꾸면서도 잔인성은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잔인성은 피와 살점이 튀는 장면 자체가 아니라 병철이 살인을 딱히 즐기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필요한 만큼 이를 저지른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을 조명했다면 좀더 입체적인 살인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넷. 예전에 《테이큰》을 보고 남의 나라(프랑스)까지 가서 딸 찾겠다고 여러 사람 잡고 정부 요원한테 총 쏘고 도망간 리암 니슨이 딸 찾고 금의환향하는 장면에서 "말도 안 돼! 프랑스 정부가 물로 보이냐!"라고 외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파괴된 사나이》는 적어도 이런 헐리웃식 해피엔딩은 피해갔다. 나름대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고 해야하나.
다섯. 나도 슈렉 보고 싶다.
100316 Love Never Dies

오페라하우스 사건 이후 10년. 팬텀은 지리 모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의 기괴한 상상력을 구현한 코니 아일랜드를 개장한다. 그동안 지리 모녀는 팬텀을 위해 봉사해왔고, 특히 팬텀을 숭배하는 멕 지리는 그의 관심과 인정을 갈망한다. 하지만 우리 팬텀은 덕심만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어 실물 크기의 크리스틴 로봇을 가지고 놀고 있다. (웨스트엔드에서는 크리스틴 로봇이 말썽을 일으켜 프리뷰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었다고.) 팬텀은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크리스틴 다애 초청 공연’을 기획하는데, 라울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돈에 팔려온 크리스틴에게 지리 모녀는 불안을 느끼고, 라울은 술주정하고, 아들 구스타브는 물색 모르고 돌아다닌다. 구스타브랑 놀아주다가 열 살배기 소년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발견한 팬텀은 ― 올레! 네가 내 아들이로구나! ― 라울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크리스틴이 다시 한 번 음악의 천사를 위해 노래한다면 영원히 그녀와 아들 곁에서 떠나는 것으로. 그녀는 결국 팬텀을 선택하고 라울은 떠나고 두 사람이 환희에 젖어있는 사이 절망에 빠진 멕은 구스타브를 데리고 사라진다. 뒤늦게 쫓아가 멕을 달래지만 실수로 발사된 총에 맞은 크리스틴은 아빠는 어디갔냐는 구스타브에게 한 마디 하고 쓰러진다 ― 여기 진짜 아빠가 있잖니. 크리스틴은 죽고 두 부자는 서로 마주보다가 손잡고 사라지는 것으로 그랜드 피날레(짝짝짝).
프레데릭 포사이드의 소설을 기반으로 했다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이야기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게 잘못일까. 적어도 내가 읽은 프레데릭 포사이드는 재치 있고 스토리텔링에 능수능란한 작가였는데 어떻게 이런 한국 아침 드라마 같은 식상한 스토리가 나올 수 있는지. 원작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왠지 뮤지컬 버전의 대본을 썼다는 벤 엘튼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고 싶은 이 심정은 뭘까. 뮤지컬과 원작 사이에 케빈 레이널즈의 영화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사이만큼의 차이가 있을 거라는 데에 10원쯤 걸겠다. -_-;;;
음악에 ALW의 우려먹기 내공이 녹아들어 전작과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Angel of Music>, <Little Lotte...>, <Twisted every way...>, <Final Lair> 같은 전작의 마이너 넘버를 연상케하는 멜로디 라인이 복선으로 등장하지만, 배경이 오페라하우스에서 코니 아일랜드로 옮겨간 만큼 락이나 보드빌 스타일의 곡도 있고 굉장히 '미국 뮤지컬'스럽다. 전작만큼 히트할 넘버가 있을지는 다 듣지 못해서 아직은 판단 불가. 일단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ALW,
Love Never Dies,
The Phantom of the Opera,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음악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Making Money
올해를 그냥 보내긴 섭섭해서 이번에도 한 해 중 읽은 베스트 도서를 꼽아보기로 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의외로 신간을 많이 챙겨 보지는 못했다. 재독한 작품도 꽤 있고. 기억나는 텍스트를 꼽아보자면 다시 읽은 진산의 『사천당문』 1*2부, 이번에 멀티 문학상을 수상한 콜린님의 『절망의 구』, 무시무시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무장한 스토리텔러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뮤지컬 원작 소설'이라는 첫인상을 완전히 깨부수고 정치적 메타포와 사정 없는 독설로 루나양을 후려친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위키드』 정도 되겠다. 그리고 암울했던 2009년을 그나마 웃으며 보낼 수 있게 해주었던 테리 프래쳇의 《디스크월드》 시리즈. 30권이 넘어가는 방대한 시리즈를 처음부터 볼 자신이 없어서 무작위로 골라 보고 있다. 지금까지 읽은 건 채 열 권이 안 되지만 언젠가 다 읽을 날이 오겠지.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Making Money』를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로 꼽았다.
『Going Postal』에 등장했던 전직 사기꾼 모이스트 폰 립빅이 다시 주인공으로 나온다. 전작에서 사형수->금빛 수트의 우체국장으로 변신한 모이스트는 백 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우체국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앙크-모포크의 인기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우체국이 정상화되자 젖먹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그의 크리미널 마인드는 슬슬 반기를 들기 시작하고, 때마침 우리의 총독님은 그에게 위험천만한(?) 은행 일을 제안한다! '저는 곧 결혼할 몸이어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지요!'라고 발을 빼던 그는 어느새 사기꾼으로서 천부적인 재능인 입방정 + 크리미널 마인드 콤보로 인해 위험의 중심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전작에서 우표의 발명으로 디스크월드의 체신 사업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그는, 우표가 공공연히 화폐 대용으로 쓰이고 있는 사실에 착안해 종이 화폐를 고안한다. 그러나 대대로 은행을 소유해온 앙크-모포크의 거부 집안 래비쉬 가문의 음모와 시민들의 금 본위 사고방식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설상가상으로 사기꾼이었던 모이스트의 과거를 아는 악당이 등장하는데!
테리 프래쳇의 장점으로 현란한 패러디와 배꼽 빠지는 슬랩 스틱 코미디, 천진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보니 소재를 가공하는 능수능란함도 빼놓을 수 없겠다. 기초적인 경제학과 약간의 역사적 사실 ㅡ 어쨌든 현실과 닮은꼴이니까 ㅡ 을 소재로 이렇게 코믹한 글이 나올 수 있다니! 코믹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이대로라면 테리 프래쳇이 살아있는 한 디스크월드 시리즈는 소재가 떨어지는 일 없이 백 권이라도 가능할 것 같다. (참으로 바람직하군.)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돈 만드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느껴지지도 않는데(주1), 『마법의 색』에서 두송이꽃이 처음 앙크-모포크에 발을 들였을 때 개념 없이 금화를 펑펑 써대는 장면이라든지, 『Interesting Times』에서 아가티안 제국으로 넘어간 린스윈드가 처음 지폐를 대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 전작에서 모이스트가 우표를 고안해내는 과정 등이 이미 이 작품을 예고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작품에 대해서는 은근히 상 복이 박한 테리 프래쳇은 이 작품으로 2008년 로커스 상을 받았다고.
머리를 잘 굴리고 혓바닥은 더 잘 놀리는 모이스트 폰 립빅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고는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인데, 전작에 비하면 역경도 별로 없고 어찌 되었든 종국에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점이 약간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운수대길 만사형통 영지발전물에서 가끔 나오는, 명령 한 번에 돈을 뚝딱 만들어 유통시키는 장면과 비교하면 섭섭하다. 주인공에게 역경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작가가 충분한 고려 없이 몇 문장으로 설명해 버리고 넘어가는 것과 디테일을 묘사하면서도 '왜 심각해지시나? 한 번 웃을 타이밍이라네'라고 눈을 한 번 찡긋하며 코믹함으로 정리해주는 것을 도매금으로 묶어서 취급할 수야 있나. 그래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왠지 모이스트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작에서 로드 베티나리는 그에게 우체국을 되살리라는 임무를 내렸고 그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은행에 들어가서 돈을 좀 굴려보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로드께서는 다음엔 국세청에 보내볼까 고려중이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아무리 테리 프래쳇이라도 참신함을 살리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게다가 모이스트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잠재워주는 위험한 누님과 결혼할 예비 신랑이니까(...)
아, 그리고 끝으로 한 마디 더. 앙크-모포크에 로드 베티나리의 팬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흡족한 사실이다. (주2) (앙크-모포크의 유일한 투표권자로서) 1인 1표제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이시며 차갑고 명석한 두뇌와 강렬한 존재감의 소유자이신 우리 총독님은 능력도 좋으시지. :) 뱃속에 야망을 키우고 있는 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앙크-모포크를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로드 베티나리 그 자신이 되는 것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로드 베티나리 워너비'들이 정신병동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이미 로드의 빠슨이가 되어 버린 루나양에게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는 심경으로 로드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암살자와 강도, 머리 빈 영웅들이 활보하는 앙크-모포크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아 전제정치를 펼쳐주시기 바란다(...)
1) 많은 사람이 루나양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재테크 또는 경영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가,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2) 누구씨를 위해 덧붙여 둔다. 언젠가 제레미 아이언스가 로드 베티나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테리 프래쳇의 장점으로 현란한 패러디와 배꼽 빠지는 슬랩 스틱 코미디, 천진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보니 소재를 가공하는 능수능란함도 빼놓을 수 없겠다. 기초적인 경제학과 약간의 역사적 사실 ㅡ 어쨌든 현실과 닮은꼴이니까 ㅡ 을 소재로 이렇게 코믹한 글이 나올 수 있다니! 코믹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이기까지 하다! 이대로라면 테리 프래쳇이 살아있는 한 디스크월드 시리즈는 소재가 떨어지는 일 없이 백 권이라도 가능할 것 같다. (참으로 바람직하군.)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돈 만드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느껴지지도 않는데(주1), 『마법의 색』에서 두송이꽃이 처음 앙크-모포크에 발을 들였을 때 개념 없이 금화를 펑펑 써대는 장면이라든지, 『Interesting Times』에서 아가티안 제국으로 넘어간 린스윈드가 처음 지폐를 대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장면, 전작에서 모이스트가 우표를 고안해내는 과정 등이 이미 이 작품을 예고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작품에 대해서는 은근히 상 복이 박한 테리 프래쳇은 이 작품으로 2008년 로커스 상을 받았다고.
머리를 잘 굴리고 혓바닥은 더 잘 놀리는 모이스트 폰 립빅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치고는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인데, 전작에 비하면 역경도 별로 없고 어찌 되었든 종국에는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점이 약간 아쉽긴 하다. 그렇다고 운수대길 만사형통 영지발전물에서 가끔 나오는, 명령 한 번에 돈을 뚝딱 만들어 유통시키는 장면과 비교하면 섭섭하다. 주인공에게 역경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작가가 충분한 고려 없이 몇 문장으로 설명해 버리고 넘어가는 것과 디테일을 묘사하면서도 '왜 심각해지시나? 한 번 웃을 타이밍이라네'라고 눈을 한 번 찡긋하며 코믹함으로 정리해주는 것을 도매금으로 묶어서 취급할 수야 있나. 그래도 그 점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왠지 모이스트가 디스크월드 시리즈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작에서 로드 베티나리는 그에게 우체국을 되살리라는 임무를 내렸고 그는 성공했다. 이번에는 은행에 들어가서 돈을 좀 굴려보라는 말에 그렇게 했다. 로드께서는 다음엔 국세청에 보내볼까 고려중이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아무리 테리 프래쳇이라도 참신함을 살리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게다가 모이스트는 크리미널 마인드를 잠재워주는 위험한 누님과 결혼할 예비 신랑이니까(...)
아, 그리고 끝으로 한 마디 더. 앙크-모포크에 로드 베티나리의 팬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흡족한 사실이다. (주2) (앙크-모포크의 유일한 투표권자로서) 1인 1표제 민주주의의 강력한 수호자이시며 차갑고 명석한 두뇌와 강렬한 존재감의 소유자이신 우리 총독님은 능력도 좋으시지. :) 뱃속에 야망을 키우고 있는 자들은 많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앙크-모포크를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로드 베티나리 그 자신이 되는 것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로드 베티나리 워너비'들이 정신병동 하나를 다 채울 만큼 많다는 사실은 이미 로드의 빠슨이가 되어 버린 루나양에게 매우 고무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는 심경으로 로드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버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암살자와 강도, 머리 빈 영웅들이 활보하는 앙크-모포크에서 오래오래 살아남아 전제정치를 펼쳐주시기 바란다(...)
1) 많은 사람이 루나양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재테크 또는 경영을 공부하는 것으로 오해했다가,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했다.
2) 누구씨를 위해 덧붙여 둔다. 언젠가 제레미 아이언스가 로드 베티나리로 출연한 적이 있다.
091025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후기

일시 : 10월 25일 오후 7시
장소 : 샤롯데씨어터
캐스팅 : 유영석, 최현주, 정상윤 외
루나양을 뮤지컬의 세계에 끌어들인 팬텀. 게다가 더블 캐스팅으로 양준모 씨가 출연한다는데 보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캐스팅 비공개 원칙 앞에 울며 겨자 먹기로 눈 감고 산 로또는 유영석 팬텀으로 드러나고... 사실 유팬텀에게 불만은 없다. 그의 절절한 감정 처리나 담백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단지 하나를 고른다면 2001년에 본 유팬텀보다는 신선한 양팬텀의 연기를 고르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양준모 씨의 우렁찬 목소리로 "저주해!!!"의 박력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기대가 무너져서 슬프다는 이야기. 유팬텀의 "저주해!!"는 저주가 아니라서...ㅜㅜ 그래도 <Masquerade>에서 카리스마를 뿜어주셨고, <The Point of No Return>도 좋았다.
크리스틴은 최현주 씨여서 다행이었다. 2001년 크리스틴이자 현재는 명실 공히 한국 뮤지컬 여배우 중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김소현 씨가 크리스틴 배역에 캐스팅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연기는 내 머릿속에 녹음된 듯이 재생되기 때문에 굳이 또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사실 이분은 어느 작품, 어느 배역을 맡아도 느낌이 똑같다.) 최현주 씨는 조금 뻣뻣한 몸연기(= 팬텀한테 덜 헤롱거린다. 대본에는 트랜스 상태라고 되어 있을텐데.)가 흠이었지만 가창력이 뛰어났고, 공포와 연민에 떠는 크리스틴에 딱이었다. 가장 돋보였던 넘버는 <Twisted Every Way...>와 <The Point of No Return>, 2막의 <Angel of Music> 리프라이즈.
라울 역의 정상윤 씨. 사실 1막에서는 실망스러웠다. 뭐, 사실 라울은 엄친아 귀족 청년 캐릭터이지 딱히 개성이 두드러지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정라울은 정말 개성이랄 게 전혀 없었다. 캐릭터에 걸맞게 귀공자다운 매력이라도 느껴져야 하는데 그마저도 그냥저냥. 그리고 크리스틴을 달래기보다는 윽박질러 설득하려는 듯한 연기가 참으로 어색했다. 그 모습이 2막에서는 젊은 혈기가 넘치는 라울로 해석이 가능해서 다행이랄까.
칼로타 캐스팅은 누구였는지 까먹었지만(사진을 보면 윤이나 씨 같기도 한데 확신은 못하겠다) 좋았다. 톡 쏘는 대사와 고음으로 질러대는 풍부한 성량의 목소리가 포인트. 아쉬운 점은 과장된 연기가 필요한 캐릭터였는데 오바가 좀 부족했달까.
앙드레/피르맹 콤비는 다시 보니 참 반갑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코믹한 연기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음. 서영주 씨 너무 좋다. 표정만 봐도 빵빵 터진다.
마담 지리는 모든 대사와 노래를 똑같은 톤으로 한다. 엄숙한 캐릭터라는 것은 알겠지만 동시에 팬텀에 대한 두려움을 비쳐야 하는데, 팬텀의 무서움에 대해 경고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고자세다. 발레리나 혼낼 때와 라울을 지하로 데려갈 때의 연기가 똑같다. 게다가 7중창의 불협화음의 중심에 이분이 서있다. 난감허네<
마이너스 요소를 꼽아보면 일단 번역. 2001년에 비해 더 매끄러운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왜 모든 등장인물이 라울을 '샤드니 자작'으로 부르는 건지. Vicomte Raoul de Chagny니까 '샤니 자작' 혹은 '라울 드 샤니'라고 불러야 할텐데 말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오늘 공연에서 최악의 씬은 바로 <Notes...>에서 <Prima Donna>로 이어지는 7중창 시퀀스. 코믹하고 역동적인 장면이라서 루나양이 <The Point of No Return>, 파이널 시퀀스 다음으로 좋아하는데 극적이고 역동적인 맛이 덜 살아났다. 그래도 칼로타/피앙지/앙드레/피르맹까지는 괜찮았다. 여기에 마담 지리/멕 지리/라울이 가세하면서 엄청난 불협화음으로 - "또 어떤 일이 생길까!!!!" - 지옥의 문을 열었다. 2막에도 7중창이 있는데 1막 만한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2막이 1막보다 낫기도 했고... (인터미션 때 상태가 '난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어'였는데 끝난 다음에는 '그래도 괜찮았어'가 되었다.) 초호화 블록버스터급 뮤지컬답게 의상도 무대도 최고로 화려하지만, 어째 삐그덕거리는 부분이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이거 양팬텀을 보기 위해 다시 로또를 사서 또 화를 참으며 1막을 넘겨야 하는건가. 상당히 고민된다.
+ 아, ALW의 신작 《Love Never Dies》가 팬텀의 속편이라고 한다.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쓴 속편을 원작으로 한 건가? 과연 ALW의 팬텀이 예전의 포스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오디언 작품 간단평
오디언(http://audien.com)에서 들은 오디오 드라마 몰아서 간단 리뷰. 순서는 가나다순이고 별점은 극히 주관적인 점수. (*) 표시가 되어 있는 작품은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http://www.golibrary.go.kr/)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 - 1점 ☆ - 0.5점
1984 (★★★)
- 조지 오웰의 원작과 달리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든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풍기던 B급 냄새가 여기에서도 남. 그럭저럭 무난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 (*)
- 영화보다 백만 배 낫다. 한 십 년 전에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봤는데 그렇게 재미없고 원작을 못 살린 영화는 처음 봤다. (그 후에 더한 것도 봤지만.) 결말을 너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것 같지만 긴장감은 잘 살렸다.
공녀 (★★★☆)
- 꽤 잘 된 작품. 차분한 어조에 여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잘 서술되어서 마음에 든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
- 단편집이라 가볍게 듣기에 좋다. 뤼팽의 뺀질뺀질함이 잘 살아남. 가니마르의 가래 끓는 목소리는 캐스팅 에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궁에는 개꽃이 산다 (★★★★★)
- 원작 소설을 읽고 개성 강한 여주인공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가 오디오 드라마도 있어서 듣게 되었는데 원작을 능가하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재미와 감수성에 비해 구성에서 취약했던 원작에 비해 각색도 훌륭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일품. (특히 여주 개리 역의 소연 님 +ㅂ+)
내시 (★★★★)
- 조선시대의 유명한 내시 처선의 일생을 다룬 작품. 인물의 미화가 심하다는 것만 빼면 좋은 작품이다. 특히 내시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말미에 등장해서 깽판(!)을 쳐 주시는 연산군은 캐릭터 자체는 전형적이었으나 광기 어린 연기는 좋았다.
노란 방의 비밀 (★★★)
- 역시 무난. 딱히 할 말은 없다.
뉴욕 더스트 (★★☆) (*)
- 이렇게 x폼 잡는 주인공 오랜만에 본다. 원작을 안 읽어서 원래 캐릭터가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먼치킨인 데다가 모든 음모가 주인공을 위해 예비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아스트랄하다. 남성 취향의 스토리라고 보면 된다.
무림수사대 (★★★☆)
-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이충호 원작 만화로 먼저 보고 드라마를 들었다. 원작 스토리가 그렇게 복잡한 편은 아니라서 만화의 동선을 어렵지 않게 따라가고 있으며 캐릭터도 잘 살아있다.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음.
바람의 화원 (★★★★) (*)
- 화원으로서 성장하는 신윤복과 그의 스승 김홍도, 신윤복 아버지의 죽음과 얽혀 있는 사건을 풀어헤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청각에만 의존하는 오디오 드라마이지만 묘사도 생생하고 몰입도가 높다. 감동 백배.
볼테르의 시계 (★★☆) (*)
- 듣는 내내 느꼈던 거지만, 주인공 볼테르가 너무 재수없다. 원작에서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놈 절대이성 운운하는 주제에 남 비웃기 잘 하고 오만하고 어리석으며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아주 웃긴 놈이다. 시간여행 하기 전의 오귀스트가 무슨 절대악이라도 되냐고. 자기가 뭐라고 남이 구애하고 있는 여자 앞에서 보란 듯이 조롱하고 짓밟다가 신분 때문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절대이성이니 정의니 운운하는 건지. 말만 뻔지르르하게 잘 하면서 남을 멸시하는 게 자기가 비판하는 귀족 나으리들과 다를 것도 없구만. 게다가 마지막 결론이 납득이 안 된다. 책에서는 어떻게 잘 풀어서 납득이 되게 설명해놨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읽을 마음이 별로 안 생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 드라마가 아니라 완독이라서 좋다. 딱히 할 말은 생각 안 남.
비단 속옷 (★★)
- 드라마는 잘 만들었다. 목소리도 좋고 효과음도 적절하고. 그러나 좋은 것은 여기까지. 듣다 보면 '뭐,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건 원작 스토리가 원래 이런 건가? 여주인공 심리가 전혀 이해 안 되고 공감도 안 되고 짜증난다. 언제는 수 오라버니의 여자로서 죽겠다더니 살아 돌아오니까 이젠 망설임 없이 이산을 택하고(얘가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큰 사건일 텐데 별로 놀라지도 않는 남주들), 그러면서도 자긴 꽃이 되어 살 수 없다고 궁을 제 발로 떠날 때는 언제고 나중엔 그냥 후궁으로 들어앉네?! 뭐가 이럼? 아놔!
사나운 새벽 (★★☆)
- 이수영 작가 책은 대부분 내 취향은 아니라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건 재미가 없다... 이수영이 쓰니 먼치킨도 다르구나 이런 생각은 드는데 드라마는 참 재미가 없고 전개가 너무 평면적이다. 연기도 무미건조하고. 감상평에 낚였다.
생사박 (★★★★☆)
- 오오, 원작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도 멋지다. 원작에 비해 많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캐릭터 개성도 잘 살아있고. 특히 금조운 너무 시크한 거 아닌가효ㅜㅜ 옥의 티라면 흑저 목소리가 너무 멋있는 남자 목소리라는 거랑, 비구니인 혜진 사태가 남자로 나왔다는 거랑, 흑저가 박투술을 인정받는 장면이 없다는 거랑(이게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데!), 당소홍 성우가 띄어 읽기를 잘 못한다는 거.
소화 (★★☆)
-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태클을 걸어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로맨스. 안 읽어봤지만 스토리가 이모냥인 건 원작 탓이겠지??;;
시골의사 (★★★)
- 카프카 소설을 완독도 아니고 오디오 드라마로 만든다는 게 좀 에러인 것 같다. 안 그래도 갑갑하고 답 안 나오는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면...쿨럭. 시골의사 역을 맡은 신용우 님도 게시판에 어려움을 토로하신 바 있다. 그래도 분위기는 잘 살아있는 편.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지.
압구정 다이어리 (★★☆) (*)
- 여주인공은 뭐 꿈도 없고 취미는 명품 쇼핑이고 평소 생각하는 것도 빈약하고-_- 남주는 지나치게 완벽하고 왜 이 여잘 사랑하는지 알 수도 없고 둘 사이에 무슨 대단한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 많고 생각 없는 여자랑 스펙이 후덜덜인 남자가 만난다는 이야기일 뿐 재미도 감동도 없다.
얼음나무 숲 (★★★★☆)
- 효과음과 음악이 적절히 곁들여져서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작품. (뭐, 현실에서 너무 유명한 곡들이 나와서 김이 좀 새긴 하지만 스토리상 누가 들어도 명곡이어야 할 테니 어쩔 수 없긴 하다. 바이올린으로 베르디의 라크리모사를 듣는 건 좀 신선한 경험이었음.) 인물의 섬세한 감정도 잘 드러나고 원작이 한 권짜리 책이니 지나친 각색도 없다. 소설로 읽을 때는 이걸 BL처럼 엮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고요가 너무 아가씨 같다 보니까 "자네의 순수를 내게 주게!"가 순결을 달라는 말로 들리고(퍽!) 한정판 CD 박셋에는 바옐 시점의 첫만남 씬이 추가되어 있다는데,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듣고 싶지는 않다. 무한 삽질 고요 시점이 좋으니까(...)
조선 과학수사대 별순검 (★★★) (*)
- 그냥저냥 재미있게 들었다. 파시 장면에서 너무 폼을 잡는다는 게 문제.
지킬 앤 하이드 (★★★)
- 김승준 님이 출연! 오오오... 그런데 그닥 재미가 없다. 책이랑 뮤지컬은 소름 돋게 재미있는데... 원작도 연기도 효과음도 좋았는데 재미가 없다는 건 각색 탓이려니 하고 생각해 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지구에서 영업 중 (★★★★★)
- 이시영 만화 원작도 엄청 재미있었는데 오디오 드라마도 발랄하고 통통 튀는 게 정말 굿굿이다. 편수가 적어서 원작에 나온 에피소드의 극히 일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개성도 잘 살아있다. 아, 타오 너무 귀여워>ㅂ<
치자꽃 향기의 여인 (★★★☆)
- 음산한 목소리와 음악, 효과음의 조화가 적절하다. 감상평에 누가 쓴 말마따나 '연기가 쩐다'. 그런데 스토리는 이해는 되는데 납득이 안 가고 뒤로 갈 수록 산으로 간다. 왜 산에 사느냐면 웃지요, 허허허...
친절한 복희씨 (★★★☆) (*)
- 나름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구질구질한 스토리 안 좋아한다. 듣고 있으면 목까지 뭐가 꽉 차오르는 느낌. 결말에서 복희씨는 뭔가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청자는 아니고...
칠석야 (★★★)
- 이재일 님의 원작이 워낙 명작인지라 드라마도 아주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자랑한다. 만애청 역의 안장혁 님은 주로 코믹한 역으로 많이 나오는데 여기선 이례적으로 진지한 역을 맡아 한 여자에게 인생을 바친 남자를 연기한다는 게 포인트. 오디언 초기작품으로, 좀 많이 거슬리는 게 발음이랑 띄어 읽기다. 아주 말을 단어마다 띄어 읽고 있다. 게다가 '니가' '니놈들이 '니들이'라고 발음하는데, '니가' '니들이'까지는 이해하지만 '니놈들이'는 심하지 않나. 그것도 유난히 많이 나오는 대사라 듣는 내내 거슬려서 혼났다. 뭐, 최근 작품에선 이 정도로 심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 (★★★★) (*)
- 매우 유쾌상쾌귀염발랄한 로맨스다. 주인공 커플이 티격태격하다 친해지는 과정이 사랑스럽다. 여주가 그렇게 개념 없지도 않고 매력 있다.
해를 품은 달 (★★★★★)
- 이건 책도 꼭 봐야 함. 로맨스임에도 매우 짜임새 있고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 사람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연기도 다들 너무 잘 하고 누구 하나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가 없다(특히 민화가 너무 사랑스럽고 연민이 갔다). 시놉시스만 읽으면 그냥 역사적 고증 따위 던져버리고 신파에만 몰두하는 흔한 로맨스 같은데 아니다.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홍염의 성좌 (★★★★☆)
- 별 다섯 개를 주려다 반 개 뺀 이유는 각색 때문. 루나양은 사실 오디오 드라마를 먼저 듣고 원작을 읽었는데(원작은 지금 전권 소장중), 드라마는 원작에 비해 결말 부분이 좀 정신 없고 이상했다. 특히 아자렛이 죽는 장면. 백작님한테 '내 사랑은 민들레 꽃씨처럼 묻혀 있다 다시 피어나고~' 어쩌고 하는 대사에서 손발이 오글오글하는 것을 참으며 '절대로 아울 님이 이런 대사를 쓰진 않았을 거야!'라고 속으로 외쳤는데, 결국은 이 짐작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카밀턴 경, 띄어 읽기 좀 제대로 해주셔요. 뭐, 이런 점을 제외하면 초호화 성우진에(유릭 역에 무려 강수진 님! 아, 목소리가 너무 시크하셔~) 음향도 멋지고 굿굿인 작품. 박셋 나온다는 소리에 급흥분했었으나 가난해서 차마 못 질렀다. 그 대신 카잘스 명곡 모음집을 샀음. lllorz
환성 (★★★☆)
- 누가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운운하기에 들었는데 이것도 약간은 감상평에 낚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끝까지 들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다. 앞부분은 좀 유치한 감도 있고 그저 그런 인터넷 판타지에 불과한데 결말은 꽤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제일 몹쓸 놈은 주인공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 모든 감상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취향이 듬뿍 반영되어 있습니다.
★ - 1점 ☆ - 0.5점
1984 (★★★)
- 조지 오웰의 원작과 달리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든다.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풍기던 B급 냄새가 여기에서도 남. 그럭저럭 무난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 (*)
- 영화보다 백만 배 낫다. 한 십 년 전에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봤는데 그렇게 재미없고 원작을 못 살린 영화는 처음 봤다. (그 후에 더한 것도 봤지만.) 결말을 너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것 같지만 긴장감은 잘 살렸다.
공녀 (★★★☆)
- 꽤 잘 된 작품. 차분한 어조에 여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잘 서술되어서 마음에 든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
- 단편집이라 가볍게 듣기에 좋다. 뤼팽의 뺀질뺀질함이 잘 살아남. 가니마르의 가래 끓는 목소리는 캐스팅 에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궁에는 개꽃이 산다 (★★★★★)
- 원작 소설을 읽고 개성 강한 여주인공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가 오디오 드라마도 있어서 듣게 되었는데 원작을 능가하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재미와 감수성에 비해 구성에서 취약했던 원작에 비해 각색도 훌륭하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일품. (특히 여주 개리 역의 소연 님 +ㅂ+)
내시 (★★★★)
- 조선시대의 유명한 내시 처선의 일생을 다룬 작품. 인물의 미화가 심하다는 것만 빼면 좋은 작품이다. 특히 내시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작품 말미에 등장해서 깽판(!)을 쳐 주시는 연산군은 캐릭터 자체는 전형적이었으나 광기 어린 연기는 좋았다.
노란 방의 비밀 (★★★)
- 역시 무난. 딱히 할 말은 없다.
뉴욕 더스트 (★★☆) (*)
- 이렇게 x폼 잡는 주인공 오랜만에 본다. 원작을 안 읽어서 원래 캐릭터가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현실 세계의 먼치킨인 데다가 모든 음모가 주인공을 위해 예비되었다는 이야기가 참 아스트랄하다. 남성 취향의 스토리라고 보면 된다.
무림수사대 (★★★☆)
-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이충호 원작 만화로 먼저 보고 드라마를 들었다. 원작 스토리가 그렇게 복잡한 편은 아니라서 만화의 동선을 어렵지 않게 따라가고 있으며 캐릭터도 잘 살아있다.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음.
바람의 화원 (★★★★) (*)
- 화원으로서 성장하는 신윤복과 그의 스승 김홍도, 신윤복 아버지의 죽음과 얽혀 있는 사건을 풀어헤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청각에만 의존하는 오디오 드라마이지만 묘사도 생생하고 몰입도가 높다. 감동 백배.
볼테르의 시계 (★★☆) (*)
- 듣는 내내 느꼈던 거지만, 주인공 볼테르가 너무 재수없다. 원작에서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놈 절대이성 운운하는 주제에 남 비웃기 잘 하고 오만하고 어리석으며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 아주 웃긴 놈이다. 시간여행 하기 전의 오귀스트가 무슨 절대악이라도 되냐고. 자기가 뭐라고 남이 구애하고 있는 여자 앞에서 보란 듯이 조롱하고 짓밟다가 신분 때문에 자기가 불리해지니까 절대이성이니 정의니 운운하는 건지. 말만 뻔지르르하게 잘 하면서 남을 멸시하는 게 자기가 비판하는 귀족 나으리들과 다를 것도 없구만. 게다가 마지막 결론이 납득이 안 된다. 책에서는 어떻게 잘 풀어서 납득이 되게 설명해놨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읽을 마음이 별로 안 생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 드라마가 아니라 완독이라서 좋다. 딱히 할 말은 생각 안 남.
비단 속옷 (★★)
- 드라마는 잘 만들었다. 목소리도 좋고 효과음도 적절하고. 그러나 좋은 것은 여기까지. 듣다 보면 '뭐,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건 원작 스토리가 원래 이런 건가? 여주인공 심리가 전혀 이해 안 되고 공감도 안 되고 짜증난다. 언제는 수 오라버니의 여자로서 죽겠다더니 살아 돌아오니까 이젠 망설임 없이 이산을 택하고(얘가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큰 사건일 텐데 별로 놀라지도 않는 남주들), 그러면서도 자긴 꽃이 되어 살 수 없다고 궁을 제 발로 떠날 때는 언제고 나중엔 그냥 후궁으로 들어앉네?! 뭐가 이럼? 아놔!
사나운 새벽 (★★☆)
- 이수영 작가 책은 대부분 내 취향은 아니라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건 재미가 없다... 이수영이 쓰니 먼치킨도 다르구나 이런 생각은 드는데 드라마는 참 재미가 없고 전개가 너무 평면적이다. 연기도 무미건조하고. 감상평에 낚였다.
생사박 (★★★★☆)
- 오오, 원작도 좋아하지만 드라마도 멋지다. 원작에 비해 많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캐릭터 개성도 잘 살아있고. 특히 금조운 너무 시크한 거 아닌가효ㅜㅜ 옥의 티라면 흑저 목소리가 너무 멋있는 남자 목소리라는 거랑, 비구니인 혜진 사태가 남자로 나왔다는 거랑, 흑저가 박투술을 인정받는 장면이 없다는 거랑(이게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데!), 당소홍 성우가 띄어 읽기를 잘 못한다는 거.
소화 (★★☆)
-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 되는, 태클을 걸어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를 로맨스. 안 읽어봤지만 스토리가 이모냥인 건 원작 탓이겠지??;;
시골의사 (★★★)
- 카프카 소설을 완독도 아니고 오디오 드라마로 만든다는 게 좀 에러인 것 같다. 안 그래도 갑갑하고 답 안 나오는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면...쿨럭. 시골의사 역을 맡은 신용우 님도 게시판에 어려움을 토로하신 바 있다. 그래도 분위기는 잘 살아있는 편.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지.
압구정 다이어리 (★★☆) (*)
- 여주인공은 뭐 꿈도 없고 취미는 명품 쇼핑이고 평소 생각하는 것도 빈약하고-_- 남주는 지나치게 완벽하고 왜 이 여잘 사랑하는지 알 수도 없고 둘 사이에 무슨 대단한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돈 많고 생각 없는 여자랑 스펙이 후덜덜인 남자가 만난다는 이야기일 뿐 재미도 감동도 없다.
얼음나무 숲 (★★★★☆)
- 효과음과 음악이 적절히 곁들여져서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작품. (뭐, 현실에서 너무 유명한 곡들이 나와서 김이 좀 새긴 하지만 스토리상 누가 들어도 명곡이어야 할 테니 어쩔 수 없긴 하다. 바이올린으로 베르디의 라크리모사를 듣는 건 좀 신선한 경험이었음.) 인물의 섬세한 감정도 잘 드러나고 원작이 한 권짜리 책이니 지나친 각색도 없다. 소설로 읽을 때는 이걸 BL처럼 엮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선 고요가 너무 아가씨 같다 보니까 "자네의 순수를 내게 주게!"가 순결을 달라는 말로 들리고(퍽!) 한정판 CD 박셋에는 바옐 시점의 첫만남 씬이 추가되어 있다는데,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듣고 싶지는 않다. 무한 삽질 고요 시점이 좋으니까(...)
조선 과학수사대 별순검 (★★★) (*)
- 그냥저냥 재미있게 들었다. 파시 장면에서 너무 폼을 잡는다는 게 문제.
지킬 앤 하이드 (★★★)
- 김승준 님이 출연! 오오오... 그런데 그닥 재미가 없다. 책이랑 뮤지컬은 소름 돋게 재미있는데... 원작도 연기도 효과음도 좋았는데 재미가 없다는 건 각색 탓이려니 하고 생각해 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지구에서 영업 중 (★★★★★)
- 이시영 만화 원작도 엄청 재미있었는데 오디오 드라마도 발랄하고 통통 튀는 게 정말 굿굿이다. 편수가 적어서 원작에 나온 에피소드의 극히 일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캐릭터 개성도 잘 살아있다. 아, 타오 너무 귀여워>ㅂ<
치자꽃 향기의 여인 (★★★☆)
- 음산한 목소리와 음악, 효과음의 조화가 적절하다. 감상평에 누가 쓴 말마따나 '연기가 쩐다'. 그런데 스토리는 이해는 되는데 납득이 안 가고 뒤로 갈 수록 산으로 간다. 왜 산에 사느냐면 웃지요, 허허허...
친절한 복희씨 (★★★☆) (*)
- 나름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구질구질한 스토리 안 좋아한다. 듣고 있으면 목까지 뭐가 꽉 차오르는 느낌. 결말에서 복희씨는 뭔가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청자는 아니고...
칠석야 (★★★)
- 이재일 님의 원작이 워낙 명작인지라 드라마도 아주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자랑한다. 만애청 역의 안장혁 님은 주로 코믹한 역으로 많이 나오는데 여기선 이례적으로 진지한 역을 맡아 한 여자에게 인생을 바친 남자를 연기한다는 게 포인트. 오디언 초기작품으로, 좀 많이 거슬리는 게 발음이랑 띄어 읽기다. 아주 말을 단어마다 띄어 읽고 있다. 게다가 '니가' '니놈들이 '니들이'라고 발음하는데, '니가' '니들이'까지는 이해하지만 '니놈들이'는 심하지 않나. 그것도 유난히 많이 나오는 대사라 듣는 내내 거슬려서 혼났다. 뭐, 최근 작품에선 이 정도로 심한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지만.
포도밭 그 사나이 (★★★★) (*)
- 매우 유쾌상쾌귀염발랄한 로맨스다. 주인공 커플이 티격태격하다 친해지는 과정이 사랑스럽다. 여주가 그렇게 개념 없지도 않고 매력 있다.
해를 품은 달 (★★★★★)
- 이건 책도 꼭 봐야 함. 로맨스임에도 매우 짜임새 있고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 사람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연기도 다들 너무 잘 하고 누구 하나 정이 가지 않는 캐릭터가 없다(특히 민화가 너무 사랑스럽고 연민이 갔다). 시놉시스만 읽으면 그냥 역사적 고증 따위 던져버리고 신파에만 몰두하는 흔한 로맨스 같은데 아니다.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홍염의 성좌 (★★★★☆)
- 별 다섯 개를 주려다 반 개 뺀 이유는 각색 때문. 루나양은 사실 오디오 드라마를 먼저 듣고 원작을 읽었는데(원작은 지금 전권 소장중), 드라마는 원작에 비해 결말 부분이 좀 정신 없고 이상했다. 특히 아자렛이 죽는 장면. 백작님한테 '내 사랑은 민들레 꽃씨처럼 묻혀 있다 다시 피어나고~' 어쩌고 하는 대사에서 손발이 오글오글하는 것을 참으며 '절대로 아울 님이 이런 대사를 쓰진 않았을 거야!'라고 속으로 외쳤는데, 결국은 이 짐작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카밀턴 경, 띄어 읽기 좀 제대로 해주셔요. 뭐, 이런 점을 제외하면 초호화 성우진에(유릭 역에 무려 강수진 님! 아, 목소리가 너무 시크하셔~) 음향도 멋지고 굿굿인 작품. 박셋 나온다는 소리에 급흥분했었으나 가난해서 차마 못 질렀다. 그 대신 카잘스 명곡 모음집을 샀음. lllorz
환성 (★★★☆)
- 누가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운운하기에 들었는데 이것도 약간은 감상평에 낚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끝까지 들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다. 앞부분은 좀 유치한 감도 있고 그저 그런 인터넷 판타지에 불과한데 결말은 꽤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제일 몹쓸 놈은 주인공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 모든 감상은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취향이 듬뿍 반영되어 있습니다.
Mentalist

(사진 출처 : imdb.com)
그런데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바로 수사국의 일원인 조 요원(팀 강). 주인공인 제인, 리스본이나 직장 내 연애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밴 펠트와 릭스비에 비해 개인적인 비하인드 스토리는 하나도 밝혀진 바 없지만, 캐릭터 이미지가 왠지 느낌이 좋다. 팀 내에서 주로 용의자를 신문하는 역할을 맡는데, 추궁할 때나 비꼴 때나 실없는 농담할 때나 표정이 한결같이 심각하다는 점이 포인트. 원래 배배 꼬인 하우스처럼 블랙 유머에 능한 독설가나 제인처럼 귀여우면서도 이중적인 캐릭터를 좋아하고, 근육질에다 딱딱한 모노톤의 캐릭터는 취향이 아닌데 은근히 조가 주인공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이 별일이다. 특히 멋진 목소리에 지적인 말투가 매력적. 역시 남자는 기럭지와 목소리다. 잠복 대기 시간에는 항상 책을 읽고 있는데, 가끔 그 상태에서 누가 말을 시키면 변함없이 심각한 얼굴로 너무너무 실없는 대사를 한단 말이지.
스토리는 빈틈없이 잘 짜였다기보다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편. 장르는 수사물이지만 딱히 극적인 반전이나 긴장감은 없다. 사실 처음 제인이 사건 현장에 나타날 때부터 화면을 잘 보고 있으면 누가 범인인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니 결말을 알고 싶어서 본다기보다는 등장인물과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워서 보는 거다. 주인공이 Mentalist인 만큼 인물의 심리적인 묘사에 신경쓰고 있는데, 일회용 조연 배우들의 역량에 따라 에피의 질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런데 이 문제도 갈수록 나아지는지 9, 10화는 참 좋았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는 시리즈.
올해 읽은 베스트 도서 : 시르트의 바닷가
작년에 이어 한 해 동안 가장 감명깊게 읽은 도서를 꼽아보기로 했다. 올해는 장르소설 신간도 유난히 많았고, 특히 일본 미스터리를 많이 접한 해였다. 비문학은 다른 해보다 적게 읽었고, 대신 고전파 희곡과 라신 관련 비평을 찾아 읽었다(라신 비극의 러브 라인은 언제 읽어도 취향이다. 연애 세포가 비뚤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치고 뽑은 것은 바로 이 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대산 세계문학총서만큼이나 좋아하는 기획이다(작품 목록만 보면 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다양성과 수록량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이다). 원래 책을 살 때에는 장르, 작가, 출판사 등등 따지면서 고르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워낙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내고 있으니 믿고서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가 가끔 예상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시르트의 바닷가』도 그런 경우.
자신의 주위를 사막으로 두르고 외부와 단절된 채 300년을 평화롭게 버텨온 오르세나. 그러나 이 나라가 누리는 평화로움은 무겁고 답답하다. 작가 줄리앙 그라크는 작품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오르세나의 권태를 그려내고 있는데,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독자로 하여금 한 줄 한 줄 읽어나갈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 무겁고 답답한 공기에 침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형용사나 시각적 묘사가 아닌, 개념어와 추상적 표현으로 이런 정취를 살려내는 세밀한 필력이 놀랍다. 덕분에 독자라는 제3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이야기와 오르막내리막을 함께 하는 진귀한 경험 ―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나머지 자신을 인물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 을 할 수 있었다.
수도의 '상위의 권태'에서 벗어나 남쪽 오지로 부임한 귀족 청년 알도가 시르트의 바닷가에서 건강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장면에서마저도 나른하고 지루한 정취는 변하지 않는다. 작품의 처음부터 이어진 이런 나른함이 깨진 것은 알도가 300년 전에 오르세나와 휴전을 했고, 그 이후 전혀 교류가 없던 이웃 나라 파르게스탄과 접촉을 시도할 때였다. 말로만 들어왔던 '적국'과의 대치 상태가 시르트에서는 추상적으로나마 남아 있음을 알고 묘한 흥분을 느낄 때부터 작품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알도가 수도에 있을 때는 전설로만 여겨졌던, 시르트에서조차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적국'이 드디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이야기는 급반전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했던 급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상의 권태를 누리고 있는 수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시르트에서는 무수한 소문과 더불어 묘한 움직임이 생겨난다. 주목할 점은, 종말의 예언에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 ― 공포, 분노, 불안 등 ― 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체화되는 전란의 전망 앞에서 알도는 연인 바네사와 보안평의회의 다니엘로에게 반발하지만, 세월에 풍화되어 가던 도시의 숙명을 깨닫는 순간 평온과 희열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침묵 속에 다가올 전쟁을 기다린다.
왜 오르세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불러올 지도 모르는 전쟁을 기다리는가? 작중에서 바네사는 권태에 사로잡혀 그저 '존재할 뿐인' 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계속해서 알도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느릿하고 차분한 서술에, 대부분의 묘사가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은 떠오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능력있는 작가는 다르다 ―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인 것 같다. 그러나 완독 후의 인상은 마치 이스마일 카다레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을 정도로.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간 읽은 책 중 최고다.
시르트의 바닷가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대산 세계문학총서만큼이나 좋아하는 기획이다(작품 목록만 보면 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다양성과 수록량에서는 전자가 압도적이다). 원래 책을 살 때에는 장르, 작가, 출판사 등등 따지면서 고르는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워낙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내고 있으니 믿고서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가 가끔 예상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시르트의 바닷가』도 그런 경우.

수도의 '상위의 권태'에서 벗어나 남쪽 오지로 부임한 귀족 청년 알도가 시르트의 바닷가에서 건강한 행복감을 만끽하는 장면에서마저도 나른하고 지루한 정취는 변하지 않는다. 작품의 처음부터 이어진 이런 나른함이 깨진 것은 알도가 300년 전에 오르세나와 휴전을 했고, 그 이후 전혀 교류가 없던 이웃 나라 파르게스탄과 접촉을 시도할 때였다. 말로만 들어왔던 '적국'과의 대치 상태가 시르트에서는 추상적으로나마 남아 있음을 알고 묘한 흥분을 느낄 때부터 작품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알도가 수도에 있을 때는 전설로만 여겨졌던, 시르트에서조차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적국'이 드디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이야기는 급반전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했던 급반전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 듯 일상의 권태를 누리고 있는 수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시르트에서는 무수한 소문과 더불어 묘한 움직임이 생겨난다. 주목할 점은, 종말의 예언에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 ― 공포, 분노, 불안 등 ― 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기대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체화되는 전란의 전망 앞에서 알도는 연인 바네사와 보안평의회의 다니엘로에게 반발하지만, 세월에 풍화되어 가던 도시의 숙명을 깨닫는 순간 평온과 희열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침묵 속에 다가올 전쟁을 기다린다.
왜 오르세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불러올 지도 모르는 전쟁을 기다리는가? 작중에서 바네사는 권태에 사로잡혀 그저 '존재할 뿐인' 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계속해서 알도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
"…알도, 자기는 이런 꿈 꾼 적 없어? 지구가 홀연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해, 그리고 더욱 빠른 속도로 도는 꿈 말이야. 이 광란의 질주 속에서 폐가 약한 짐승들은 그 자리에 낙오되어 버리지. 이들은 미래를 좋아하지 않는 짐승들이야. 그러나 숨쉬기조차 힘든 속도를 견디는 심장이 자기 안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시선과 본능에 죄와 파멸로 보이는 것, 그것은 바로 이러한 도약을 방해하는 것이야. 단지 옆에 있기 때문에 함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미치는 먼 곳을 한번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은 사람일 게 분명해.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저주받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먼 곳을 차단하기 위해 그 도시들이 탄생하고 건설된 것처럼 여겨진다는 이유 때문이지. 이런 도시들은 편안한 도시들이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세계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자신의 바퀴만을 돌리고 있을 뿐이지. 나는 거리에서 사막의 바람이 느껴지는 도시만을 좋아해. 어떤 날은, 알도." 바네사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르세나를 심하게 원망하기도 했어. 거기엔 늪의 냄새밖에 없어. 나는 이따금 도시가 지구의 자전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 331~332p그러나 그라크는 이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 자체에 구현해내려고 한다. 그라크가 작품 전반에서 그리고 있는 오르세나의 인상이 얼마나 나른하고 지루하며 실체가 없는지는 이미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타자'로서 등장한 것이 '이웃 나라-적국'이다. 사실 작품의 거의 말미에 이르기까지도 과연 오르세나에 적이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오르세나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기는 하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적국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추상적이나마 뚜렷한 인상을 가진 오르세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 허깨비에 불과했던 '적'이 마침내 실체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낼 때, 자기완결적이던 오르세나의 견고한 일상이 무너진다. '이렇게, 그들이 오는군요!'라고 외치는 알도의 대사에서는 전율마저 느껴진다.
『시르트의 바닷가』를 읽으면서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느릿하고 차분한 서술에, 대부분의 묘사가 추상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상은 떠오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역시 능력있는 작가는 다르다 ―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인 것 같다. 그러나 완독 후의 인상은 마치 이스마일 카다레를 처음 만났을 때만큼이나 강렬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쉴 수 있을 정도로.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간 읽은 책 중 최고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 레오니드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치프킨은 소련 출신의 지식인으로, 낮에는 의사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성실한 작가였지만 생전에 단 한 줄의 소설도 출판해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주위의 적대적인 시선하에 글 쓰는 것을 들킬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서방으로의 망명은 번번이 좌절되고 사회적인 압력이 더해가는 와중에도 묵묵히 글을 썼다는 치프킨은,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결코 책으로 낼 수 없을 거라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남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을 거란 이유로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그의 작품이 그에게는 동시에 위안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 안에서 치프킨은 분신인 익명의 화자의 입을 빌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역시 고통받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던 대문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도스도예프스키가 살았던 시대 상황의 격변, 투르게네프 등 다른 러시아 작가들과의 불화, 그리고 여담으로 또 한 명의 작가 솔제니친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독자 눈앞에 그려지는 도스도예프스키의 모습은 존경받는 대문호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우울과 좌절, 강박감에 시달리는 자존심 강하고 괴팍한 인물로, 아내 안나의 절대적인 헌신과 애정에서만 위안을 얻는 인간이다. 치프킨과 도스도예프스키는 살았던 시대도, 혈통도, 성격도 다른 사람이지만 깊은 애정과 숭배를 바탕으로 섬세하게 그려낸 대문호의 모습에서는 진한 인간적인 동질성이 느껴진다. 이렇듯 두 이야기를 대위적으로 엮어내는 놀라운 솜씨 덕에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느새 독자의 마음속에 작가 대 작가로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끝내 생전에 발굴되지 못한 작가와 그의 절망을 생각하면 우울하기 그지없지만, 손에 만져지는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 섬세하고 사실적인 상상력과 도스도예프스키에 대한, 더 나아가 그 정열적인 러시아 문호조차 포용하지 못했던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담겨 있다. 강력 추천.
낙소스 앨범 두 장 : 무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