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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위니 토드》 후기

2007/10/10 02:00, 글쓴이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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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Sweene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일시 : 10월 9일 저녁 8시
장소 : LG아트센터
캐스팅 : 류정한(스위니 토드), 홍지민(러빗 부인), 임태경(안소니), 유에스더(조안나), 토비아스(홍광호)

   오늘의 20자 평 : 러빗 부인이 스위니 토드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한동안 OST만 들으며 대리만족을 추구하다가 결국 지르고야 만 공연. Sing-along이 안된다고 불평한 적도 있었지만 계속 듣다보니 은근히 뇌리에 박히는 중독적인 음악과 실제 공연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루나양을 이끌었습니다. 가사 전달에 어려움이 있다는 후기를 많이 읽었는데 예습(?)을 하고 가서인지 몰라도 생각만큼 곤란을 겪지는 않았고, 번안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비록 〈A Little Priest〉에서 각운 맞추기를 포기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요. 받아칠 대사를 찾지 못해서 굳어버리는 스위니를 보고 싶었는데요.) 하지만 〈Kiss Me〉같은 곡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버벅거려 주어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마저 느끼게 했답니다.

 "등골이 오싹할 얘기. 시퍼런 눈빛의 한 남자…"로 시작되는 한 남자의 복수극. 아름다운 아내를 탐한 판사 때문에 유형을 살고 딸까지 빼앗긴 재능있는 이발사 벤자민 바커.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 돌아왔지만 정든 도시는 이미 거지들과 위선자들이 드글거리는 음험한 곳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전부터 바커를 사랑해왔던 러빗 부인은 돌아온 그를 반기며 이발사 일을 하게 도와 주고, 스위니 토드로 다시 태어난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합니다. 핏빛 복수극에 스위니의 딸 조안나와 안소니의 로맨스, 사회 풍자적인 유머까지 더해져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집니다. 인터미션까지 합쳐서 3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이지만 지하철이 끊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잠시 잊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20자 평에 적은 대로, 이번 공연에서는 러빗 부인 역을 맡은 홍지민 씨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영리하고, 사악하고, 주책맞고, 전반적으로 우스꽝스럽기도 한 인물인데, 이를 어찌나 능청맞게 잘 연기하는지 스위니 토드 역의 류정한 씨가 오히려 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랄까, 장악력이랄까 그런 점에서 홍지민 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말이지요. (게다가 커튼 콜에서의 팬서비스 ㅡ 도둑 키스(!) ㅡ 에서마저 압도해 주셨으니 이를 어째ㅠ_ㅠ*) 루나양이 편애하는 러빗 부인이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해미 씨 캐스팅을 보려다가 시간이 적당하지 않아서 나름대로 호평을 받고 있는 홍지민 씨 캐스팅으로 건너갔는데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주인공이 위축되었다는 느낌은 있지만(류정한 씨가 요새 살이 빠졌는지 엄청 수척해 보여서 더 그랬습니다), 류정한 씨도 〈Epiphany〉에서 실력 발휘를 해 주셔서 그나마 균형이 이루어졌달까요. 집에 오는 길에 "다들 죽어도 싸지" 멜로디가 자꾸 귀에서 맴돌아서 난감했습니다.

 사실 루나양이 러빗 부인을 편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코믹, 스릴러, 호러, 로맨스를 아우르는 전천후 캐릭터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는 점이 포인트. 연애세포 어딘가가 비뚤어진 루나양은 러브 트라이앵글도, 링도 아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러브 라인,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 하지만 누구 하나 보답 받지 못하는 이런 종류의 관계를 좋아합니다. (물론 현실 말고 작품 상에서요.) 파이널 시퀀스에서 러빗 부인이 "Yes, I lied 'cause I love you!"라고 외칠 때 소름이 돋았던 것도 그 때문. ("사랑해요"는 조금 임팩트가 덜했지만요.) 〈By The Sea〉는 또 얼마나 슬픈 곡인가요. 유머러스한 인물이 이런 역을 겸하니 비극성이 더욱 배가됩니다.

 러빗 부인을 사랑하는 토비 역의 홍광호 씨도 상당히 호연해 주셨는데, 조금 모자란 인물을 연기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Not While I'm Around〉에서 좀더 부드럽게 불렀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피렐리가 등장하는 부분은 참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안소니 역의 임태경 씨도 상당히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역시나 〈Kiss Me〉에서는 조안나 역의 유에스더 씨와 호흡이 잘 안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네요. 워낙 빠른 곡인데다, 번안한 가사를 원곡 리듬으로 부르는 고충은 이해가 갑니다.)

 캐릭터도, 스토리도 빈틈없는 작품이지만 새삼 루나양을 감탄하게 했던 것은 무대 장치였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철골 구조물처럼 생긴 것이 작품의 음산한 분위기를 살리는 데 일조하기도 하고, 별다른 장치가 필요 없이 갖가지 배경 역할을 다 해내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스위니의 이발소와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를 동시에 보여주는 2층 구조물도 그렇고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도 멋있었습니다. 그 철골 뒤에서 비치는 붉은 조명, 주요 인물들이 다시 등장해 대야에 손을 씻고, 허깨비 같은 롱코트의 그림자들 가운데 선 스위니 토드가 복수는 저주를 낳는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각인이 되어 남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기립박수가 터지고 난리가 났는데, 그럴 만한 공연이었습니다. 위험할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좋은 배우들과 만났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요. 막 내리기 전에 이 캐스팅으로 다시 보고 싶은데 과연 기회가 또 닿을지 미지수라 암담해집니다(…)
2007/10/10 02:00 2007/10/10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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